리얼리티 뉴스쇼 촬영 도중 발생한 자살사고, 방송사의 책임은? 미국 NBC ‘To Catch a Predator’ Suicide Case – 언론의 취재윤리와 법

미국 NBC방송의 뉴스쇼 Dateline의 프로그램 중 “To Catch a Predator”라는 것이 있습니다.  방송사와 경찰이 미성년자로 하여금 온라인채팅을 통해 미성년 성범죄자를 유인하게 한 후, 카메라가 설치된 장소로 그를 불러들여 체포하는 장면을 그대로 방영하는 프로그램인데요, 일단 용의자가 걸려들면(?) 유명사회자인 크리스트 핸센(Christ Hansen)이 갑자기 나타나 용의자와 “왜 이런 짓을 저질렀나요”와 같은 인터뷰를 하게 됩니다(어떤 사람들은 도망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놀랍게도, 인터뷰에 동의하지요).  사회자가 방을 나서면 경찰들이 들이닥쳐 용의자에게 총을 겨누고 바닥에 엎드리게 한 후 수갑을 채우는 장면까지 그대로 안방에 방영됩니다.

그런데 2006년 11월 이 프로 촬영 중 큰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바로 용의자로 지목된 자가 자기 집에서 자살하는 사고였습니다.  현직 검사로 알려진 이 사람(이하 편의상 “A”라고 하지요)은 방송사와 경찰이 내세운 미성년자(13세 소년)와 온라인상으로 접촉하였습니다.  그런데 A는 방송사가 섭외해 놓은 장소에 나타나지를 않았지요.  이에 방송사는 경찰로 하여금 A의 집에 가서 A를 체포하도록 요청하였습니다.  경찰은 법원에서 영장을 받아 A의 집으로 찾아갔고, 경찰들이 들이닥치는 모습을 본 A는 그 자리에서 총으로 자살을 하였습니다. 아마도 체포 시 입게 될 모욕감을 이기지 못했던 것으로 추측됩니다.

이후 A의 여동생이 프로그램의 제작사인 NBC가 오빠의 자살에 책임이 있고 동인의 명예를 훼손하였다며 1억불의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하였습니다.  NBC는 방송사인 자신들에게 A의 자살을 방지할 의무가 없고 취재방식에도 특별히 문제될 것이 없어 책임이 없다고 반박하였지요.

지난 26일 미국 뉴욕남부지방법원은, 최종결론은 아닙니다만, 일응 원고(A의 여동생)의 주장이 받아들여질 여지가 있다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즉 결정문에 따르면, “만약 원고 소장에 적시된 사실이 전부 사실이라면 NBC의 책임이 인정될 수 있다”고 한 것입니다.

미국 법원은 “(원고가 적시한 사실관계가 진실임을 전제로 할 때) NBC는 책임있는 저널리즘이 지켜야 할 선을 넘어 무책임하고도 무모하게 합법의 영역을 침범한 것으로서,  NBC는 단순히 법 집행을 보도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자신의 텔레비전 쇼의 흥행을 위해 보다 드라마틱한 상황을 연출하고자 적정한 법집행에 불필요하고도 정당하지 못한 방식의 법집행을 연출하고, 경찰로 하여금 그와 같은 행위를 하도록 조장한 것”이라는 취지로 판단하였습니다.

원고가 주장하는 사실관계 중 법원이 특히 주목한 대목은, “56살이나 된 검사를, 그것도 자신의 집에 있는 사람을, 어떤 죄로 기소된 것도 아니고 총으로 무장한 것도 아님에도, NBC는 경찰로 하여금 완전무장한 기동대(SWAT)를 파견토록 한 점”을 들었습니다(이 밖에도 NBC가 경찰이 체포계획을 수립하는 데 깊숙히 관여하고(사실상 주도하도), 그에 필요한 인적, 물적시설을 제공하였다는 점도 주목하였습니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는 순전히 시청자를 자극하고 재미를 주기 위한 연출에 불과한 것으로서,  그와 같은 NBC의 취재방식은 상대방(A)으로 하여금 자살이나 기타 자해행위를 하게 할 실질적인 위험(substantial risk)을 조장하는 것”으로서 “A의 자살을 예견할 수 있었고, 그럼에도 이를 막기 위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취재방식 또한 여러 모로 취재윤리를 위반”하였으므로 그에 따른 법적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미국 법원이 언론이 지켜야 할 취재윤리로서 언급한 내용은 여기를 참조).

이 사건은 언론의 취재과정에서 언론과 취재대상과의 사이에 발생할 수 있는 여러 문제를 생각하게 합니다.  물론 취재대상의 ‘자살’이라는 극단적이고도 이례적인 결과가 발생하기는 하였지만, 언론이 추구하는 ‘국민의 알권리’ 내지 ‘공공의 이익’과 취재대상이 개인으로서 갖는 사생활의 자유(privacy)나 신체의 자유, 명예의 문제 등은 언제나 서로 충돌하는 영역에 있기 마련이지요.

위 사건에서 미국법원은 (원고가 주장하는 사실관계가 사실임을 전제로 할 때) NBC는 A의 사생활을 침해하였다고 보았습니다.  그 이유로는 외부적으로는 법집행(즉 영장집행)의 형식을 취하고 NBC는 이를 촬영하는 형식을 취하였지만, 그 실질은 ‘데이트라인’이라는 쇼를 위한 자극적인 영상을 연출하고자 방송사의 지시와 요청이 주가 된 것으로서, 정상적인 법집행으로 볼 수 없다는 점을 들었습니다(미국 대법원 판결 중에는, 워싱턴 포스트 기자와 사진기사가 체포영장을 집행하기 위해 혐의자의 집에 침입한 것은 사생활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미디어의 존재가 영장의 집행에 하등의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랍니다.  유사한 판결로서, FBI가 사유지에서 수색영장을 집행하는 데 CNN 기자가 동행한 것도 마찬가지로 사생활의 자유 침해라고 본 예도 있답니다.  미디어가 단순 수동적인 위치, 관찰자적인 위치에서 법의 집행을 촬영한 것이라면 문제가 없지만, 미디어의 개입 내지 동행의 주된 목적이 법집행이 아니라 상업방송의 취재거리 확보를 위한 것으로 보인다면, 법원은 그와 같은 침입은 필연성이 인정되지 않아 사생활의 자유를 침해한 것으로 보는 취지인 것 같습니다).

이에 대해 NBC는 체포/수색영장이 발부된 이상 하등의 문제가 없는 것이라고 주장하였으나,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법원은, 이 사건 영장이 발부되는 과정에서 NBC가 영장집행 과정에 동행한다는 사실이 영장발부 판사에게 알려지지 않았다는 사실, 그리고 해당판사가 만약 그와 같은 사실을 알았다면 영장을 발부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진술한 사실을 주목하여, 영장의 효력 자체가 의심되고, 영장이 텔레비전 스탭의 참여를 정당화하는 것도 아니라고 보았습니다.

그래도 드는 의문점은 언론이 추구하는 공공의 이익이라는 점에서 볼 때, NBC의 촬영 내지 관여가 정당화되어야 하지 않느냐는 점입니다.  법원은 그와 같은 주장 또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법원은, 수사기관이 촬영한 것을 방송사가 단순 방영하는 수준이라면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나, 이 사건처럼 주객이 전도되어 방송사가 사실상 법집행을 계획, 집행(지시)하고 법집행을 엔터테인먼트를 위해 사용한 경우는 허용될 수 없다는 취지로 판단하였습니다.

위 결정은 아직 최종적인 것은 아닙니다.  법원은 (NBC의 주장과 달리) 원고의 주장이 전혀 근거없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선언한 것이고, 최종적인 결론은 앞으로의 사실조사를 통해 내려질 것입니다(원고가 주장하는 사실이 전부 진실이라면 NBC의 책임은 인정되겠지요).

미국 방송의 리얼리티쇼(reality show)와 각종 프로그램들은 그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내용과 장면으로 인해 여러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이 사건과 같은 극단적인 사건이 발생한 것이고, 과연 그와 같은 취재방식이 어느 선까지 법에 의해 허용될 수 있는 것이고, 언론이 지켜야 할 취재윤리는 또 어떻게 재정립해야 하는지는 참으로 의미있는 문제입니다.  그런 면에서 앞으로 미국 법원이 이에 대해 어떤 최종 판결을 내릴지 지켜볼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우리나라였다면 어찌되었을까요? 과연 방송사가 촬영 중 발생한 자살사고에 책임이 있을까요? 그 사람의 사생활을 침해한 것일까요? 정답은 섣불리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사실관계가 워낙 다양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우리나라의 손해배상법은 “타인에게 고의, 과실로 위법한 행위를 하여 그로 하여금 손해를 입게 한 경우”에는 손해배상책임이 인정됩니다.  어떤 게 위법행위인지는 예시되어 있지 않습니다.  헌법과 기타 법률에서 부여하는 권리를 침해하였다면 당연히 위법행위가 되겠지요.  그런 면에서 헌법이 보장하는 사생활의 자유가 침해되었는지는 손해배상책임의 성립 여부를 논하는 데 있어 주요 쟁점이 되기도 합니다(위 사건에서 원고측 변호사 또한 그런 입장이었고요).

자살을 방지할 의무가 있는지 문제는 어떨까요? 일반적으로 언론기관에게 그와 같은 의무가 인정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다만, (특히 위 사건에서 법원이 언급한 바와 같이) “상대방이 자살을 할 수 밖에 없게 만든 상황”은 누가 만들어 낸 것인지, 그와 같은 상황이 언론취재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었는지, 그에 따른 법적 절차 기타 언론기관의 내부규범은 제대로 준수되었는지, 그와 같은 상황이 진정으로 추구한 목적과 동기는 무엇이었는지(순수한 보도의 목적이었는지, 아니면 오락성을 제고하기 위한 것이었는지), 일반인의 입장에서 봤을 때 당시 상대방이 자살하리라는 점을 예견할 수 있었는지 등의 제반사정을 검토한 후 언론기관에 책임이 인정될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참고로, 비록 언론기관에 대한 것은 아니지만, 검찰청에서 조사받던 피의자가 조사 도중 갑자기 창문으로 뛰어내려 사망한 사건에 대해 우리 대법원은 당시 수사기관이 피의자의 그와 같은 돌발행동을 예견할 수 없었다는 취지에서 국가의 손해배상책임을 부인한 예가 있었습니다.  수사기관의 경우에도 이런데, 일반 사기업에 불과한 언론기관이라면 그 책임을 인정하는 데는 훨씬 더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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