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의 ‘무한도전”이 저작권 위반 시비에 휘말렸습니다. 관련기사에 따르면,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의 작곡가 박문영씨가 “‘무한도전’이 자신의 허락없이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을 개사해 방영한 것은 자신의 저작인격권을 침해한 것”이라며 서울남부지검에 고소장을 제출했다고 합니다.
저는 문제된 무한도전 방영분을 보지 못해 무한도전팀이 문제의 곡을 어떤 식으로 개사, 변형하였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저작권자인 박문영씨의 허락없이 함부로 노래 가사를 개사하여 방영하였다면 저작권 중 동일성유지권을 침해한 것이라고 볼 여지가 있을 것입니다. 작곡가인 박문영씨의 인터뷰 기사를 보면, 박문영씨는 곡, 특히 가사에 대한 애착심과 자부심이 상당히 강하신 것 같고, 그 점에서 무한도전 코너가 자신의 ‘자식’과 같은 가사를 함부로, 그것도 우스꽝스럽게 바꾸어 방영한 것에 대해 매우 불쾌히(?) 여기시는 게 아닌가 생각되었습니다. 그와 같은 작가의 심정,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물음이 떠오릅니다. 창작자에게 저작권이라는 배타적인 권리가 인정되는 것은 인정하지만, 과연 그 권리의 범위는 어디까지일까?
창작자에게 인정되는 저작권도 결국은 우리사회에서 보다 많은 창작행위들이 이루질 수 있도록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것입니다. 오로지 창작가 개인의 영리나 저작물에 대한 창작자의 독점을 인정하려는 취지는 아니지요.
최근 미국에서 ‘해리포터’의 작가 조앤 롤링과 ‘해리포터 백과사전’을 출판하려는 작가 사이의 저작권 침해 분쟁이 세간의 관심을 끌었었는데요, 어느 미국 변호사가 말한 것처럼 “조앤 롤링의 주장(저작권 침해)도 일리는 있지만 그렇다고 조앤 롤링이 자신의 저작물에 대해 지나친 독점욕을 부려 건전한 창작행위들을 봉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는 시선도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저작권자의 권리를 어느 범위까지 보호할 것인지는 때로는 그것이 우리사회의 창조행위와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는 것이 될 수도 있고, 때로는 이를 신장시키기도 하는 중요한 문제인 것입니다.
위와 같은 저작권의 보호범위를 논하는 데 있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패러디(Parody)”입니다. MBC 또한 (공식입장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무한도전의 개사는 ‘패러디’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이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미국에서는 패러디(그 개념과 사례에 대하여는 다음에 다시 글을 올리겠습니다)로 인정되는 경우에는 저작권 침해라고 보지 않습니다. 그 자체가 하나의 독립된 창작행위이므로 이를 존중해주겠다는 것이지요. 우리나라는요? 예전에 서태지씨와 ‘컴백홈’을 패러디한 이재수씨 사이에 분쟁이 있었지요. 당시 법원은 패러디를 주장한 이재수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저작권(동일성유지권) 침해를 인정하였습니다. 최근에는 가수 아이비와 ‘유혹의 소나타’ 뮤직비디오가 일본 게임업체의 저작권을 침해한 사건에서 아이비 소속사 측에서 ‘패러디’ 주장을 하기도 하였으나 법원은 이 역시 받아들이지 않았지요.
우리나라에서의 패러디 사건들을 보며 드는 생각은, 우리나라는 혹 “창작행위”는 무언가 진지하고 고상하며 무언가 교훈적이어야 하고, 반대로 천박하거나 우스꽝스럽거나 장난스러워서는 안 된다는 어떤 강박관념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점입니다. 미국같은 경우 패러디를 인정하는 범위가 넓은 것으로 알려져 있고, 이는 그들이 패러디가 진지하고, 고매하고 고상하여 이를 보호해주자는 것이 아니라 패러디 자체가 대중의 표현의 자유를 충족시키는 하나의 도구임을 분명히 인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쨌든, 이 사건의 1차적 책임을 따지자면 저작권 침해 이슈를 제대로 사전 점검하지 못한 MBC측에 있다고 봐야겠지요. MBC가 사전에 저작권자인 박문영씨를 접촉하여 그 취지를 충분히 설명하고 개사에 대한 양해를 구했다면 이런 분쟁은 당연히 없었겠지요(관련기사 중 무한도전의 PD님이 “평소 익숙하고 좋은 곡이라 썼다”거나 ”저작권협회와 음원사용계약을 체결하여 개사를 해도 문제가 없을 것으로 알았다”고 해명하는 대목은 제작진들이 아직 저작권에 대해 이해가 충분하지 않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도 들게 합니다. 물론 제작자들이 저작권 내용 하나하나까지는 알 수도 없고 알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다만 어느 부분이 문제는 될 수 있겠구나라는 감 정도는 가질 필요가 있고, 적어도 사전에 법률전문가의 리뷰를 받는 것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저작권자의 입장에서도 형사고소라는 극단적인 방법말고도 MBC와의 대화를 통해 원만히 해결할 수는 없었는지 궁금해지는 대목입니다(물론 우리나라는 형사고소를 협상의 무기로 오용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여 이 사건 또한 궁극적으로는 협상을 목표로 하고 있을지 또 모르는 얘기이기도 합니다만…).
법적으로만 본다면야, MBC ‘무한도전’ 사건이 저작권(동일성유지권) 침해에 해당되는지, 아니면 패러디에 해당하여 저작권 침해가 아닌지는 문제되는 개사 방영부분이 무한도전에서 차지하는 양적/질적 분량, ‘무한도전’이라는 프로의 성격과 개사의 목적과 동기 등등 여러 사정을 고려하여 판단될 것입니다. 일응 지금까지의 사례에 비추어 보면 우리나라에서 패러디라는 주장으로 MBC가 저작권 침해로부터 자유로워지기는 그리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이고, 그런 관점에서 MBC와 저작권자 사이의 합의(settle)에 의한 분쟁종결도 예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무한도전의 무한패러디 혹은 저작권자의 무한저작권? 이에 대해 우리 검찰과 법원은 어떤 결론을 내릴지(혹은 내릴 기회나 가지게 될지?) 한 번 지켜 봐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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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언론에 보도된 바와 같이, 역시나 위 사건은 양측의 합의로 종결되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