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이천수 선수가 기자회견에서 한 “에이전트의 엉터리 계약” 발언이 세간의 관심을 끌었는데요. 이천수 선수에 따르면 에이전트가 자신의 동의 없이 “한 시즌 20경기 이상 뛰면 연봉의 10%에 해당하는 금액을 구단이 에이전트에게 지급한다”는 내용의 계약을 체결했다고 합니다. 이천수 선수는 ‘구단이 에이전트에게 지급해야 할 돈 문제’로 자신의 출전 여부가 영향받지 않을까 불안하다는 것입니다. 아울러 “그 동안 에이전트들에게 너무 실망을 많이 해 이제 누구도 믿기 어렵다”는 말까지 덧붙였다고 합니다(관련기사는 여기).
이에 대해 이천수 선수의 에이전트 측은 “이 부분은 이천수가 아닌 구단과 에이전트의 별도 계약이기에 선수가 상관할 부분이 아니다. 에이전트와 구단의 합의 내용은 선수의 경기 출장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관련기사는 여기).
일단 에이전트 측에서 부인하고 있고 정확한 사실관계가 밝혀지지 않고 있어, 위 사건에 대해 법적으로 뭐라 말할 수는 없는 상황입니다. 그렇다면 상황을 가정해보지요. 선수를 위해 이적협상을 진행한 에이전트가 협상 상대방인 구단으로부터 보수(Agent’s Fee)를 받는 것이 법적으로 문제될 게 없을까요? 누군가의 주장처럼 “(그런 보수에 관한 약정은) 선수와 구단의 계약이 아니라 에이전트와 구단의 계약이므로 문제가 없다”고 볼 수 있을까요?
선수와 에이전트의 법률관계의 핵심은 “위임관계”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즉, 선수는 구단과의 협상업무(이 밖에도 여러 업무가 있을 수 있지만)를 에이전트에게 위탁한 것이고, 에이전트는 선수(본인)를 위하여 구단과의 협상업무를 대신 수행하는 것이지요. 그런 만큼 에이전트는 협상과정에서 구단이 아닌 선수의 이익을 위하여 행동하여야 하고(충실의무), 선수의 이익과 충돌하는 행위(이해상반행위, conflict of interests)를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선수의 에이전트가 상대방인 구단으로부터 보수를 받는 경우 이는 선수의 이익을 위하여 행동하여야 할 에이전트가 선수와 반대되는 이해당사자로부터 금전적 이익을 제공받는 것이어서 문제될 소지가 있습니다. 물론 구단이 선수에게 지급해야 할 연봉에서 선수가 에이전트에게 지급해야 할 보수(Agent’s Fee)를 공제한 후 그 공제된 만큼을 에이전트에게 지급하는 경우라면, 이는 결과적으로 선수 자신이 에이전트 보수(Agent’s Fee)를 지급한 것과 마찬가지이므로 문제될 게 없을 것입니다(즉 이 경우는 지급 방법만 다를 뿐 지급주체가 선수이지 구단이 아니라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런 경우가 아니라면 결과적으로 에이전트가 선수를 위한 사무를 처리하면서 그 상대방으로부터 금전적 이득을 취하는 것이 되고, 이 경우 선수를 위하여야 할 에이전트가 오히려 구단에게 유리한 내용의 계약을 체결하는 등 위임의 본질에 반하는 행동을 할 우려가 있으므로 금지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특히 에이전트가 구단과의 보수 지급약정 사실을 선수에게 알리지 않은 경우는 더욱 문제가 심각해질 것입니다. 에이전트는 협상과 관련하여 중요한 사실을 본인인 선수에 대하여 알려야 할 의무가 있는데, 에이전트가 상대방(구단)으로부터 어떠한 보수(금전적 이익)를 받게 된다는 점은 선수와 에이전트의 신뢰관계를 좌우할 수 있는 중요한 문제이므로 이는 반드시 본인에게 알려야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에이전트의 입장에서는 ‘어차피 돈을 지급하는 것은 구단이지 선수가 아니지 않느냐’며 반문할 수도 있으나, 그리 간단히 볼 문제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외관상으로는 구단이 지급하는 돈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만큼 선수에게 지급되어야 할 연봉이 감소되는 결과가 초래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특히 선수가 그와 같은 에이전트와 구단 간의 약정 사실을 모르는 경우). 또한 “구단과 선수 모두에게서 보수를 받는 에이전트”란 결국 협상 과정에서 구단과 선수 양 쪽 모두를 위하여 업무를 처리하는 “쌍방대리”(dual representation) 문제를 불러 일으킬 수 있습니다(우리나라는 본인의 동의 없이는 쌍방대리가 허용되지 않습니다. FIFA는 아예 dual representation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와 같은 보수 지급에 관한 약정이 선수와 구단 간의 계약서에 기재된 것이 아니고, 에이전트와 구단 간의 별도 계약에 의한 것이므로 선수가 관여할 바 아니라는 주장 역시 받아들여지기 어려울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계약의 형식이 아니라 그 내용이지요. 에이전트와 구단 간의 계약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선수와 구단 간의 협상과 관련하여 이루어진 것이고 그 내용 또한 선수와 구단 간의 관계나 선수와 에이전트 간의 신뢰관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부분이라면 에이전트는 당연히 그 내용을 선수에게 충분히 설명하고 협의를 하여야 할 것입니다.
FIFA의 Regulations Players’ Agent 역시 “에이전트 보수는 반드시 에이전트의 고객(본인)이 당해 에이전트에게 직접 지급해야 하고, 그 이외의 보수는 인정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다만 그 예외로서 “구단이 선수의 서면동의를 얻어 선수 대신(on his behalf) 에이전트 보수를 지급하는 것은 허용된다. 이 경우 구단이 대신 지급하는 보수는 선수와 에이전트 간에 합의된 보수 조건에 합치되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결국 에이전트가 선수의 동의 없이 구단으로부터 보수를 받는 것은 금지되고 있는 것이지요. 선수가 동의하는 경우에도 이는 엄연히 구단이 “선수 대신” 지급하는 것이므로 결국 구단이 지급한 보수만큼 선수가 구단으로부터 지급받을 연봉이 줄어되는 결과가 될 것입니다. 이와 달리 선수의 연봉과는 별도로 구단이 에이전트에게 보수를 지급하는 것은 “선수 대신” 지급하는 것이 아니므로 허용되기 어려울 것입니다.
축구의 본구장이라 할 수 있는 영국에서는 선수의 에이전트가 협상상대방인 구단으로부터 보수를 받는 것이 일반적인 관행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는 영국의 에이전트 관련 규정이 “에이전트는 계약의 어느 한쪽 당사자로부터만 받을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어서 그랬던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2007년 프리미어리그 구단과 에이전트 간 선수이적에 관한 부정한 거래가 문제되어 에이전트 관련 규정이 대폭 개정되었고, 그 결과 종래 구단이 에이전트에게 보수를 지급하는 관행은 이해상충과 조세회피의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있어 결국 피파 규정과 같이 에이전트는 보수를 “고객(본인)으로부터만 받아야 한다”고 개정하였다고 합니다.
현대 축구 산업에서의 에이전트의 비중은 나날이 놓아만 가고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에이전트가 특별히 하는 일도 없으면서 선수에 관한 정보를 팔아가며 이적비용만 늘린다는 비판도 있습니다만, 선수의 커리어 관리, 체계화된 마케팅, 선수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비즈니스 등 에이전트가 선수를 위해 기여해 온 바는 지대하다고 할 것입니다.
다만 선수와 에이이전트 간에는 상호 신뢰가 최우선이라 할 것인데, 과거의 사례를 놓고 보면 에이전트 측에서 선수에게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아 상호 불필요한 오해를 사는 경우도 많았고, 에이전트와 선수가 법적으로 민감한 부분에 있어 충분한 사전 검토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 일을 시작하여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경우도 흔치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외국에서는 운동선수나 연예인이 자신의 커리어 관리를 위한 팀(team)을 조직하면 거기에 반드시 변호사를 포함시키는 게 일반적입니다. 변호사야말로 법적인 부분에서 가장 정확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조언자이고, 따라서 에이전트나 매니저와 계약할 때나 아니면 중요한 계약을 협상, 체결하는 경우에는 반드시 변호사의 도움을 얻고 있는 것이지요. 우리나라는 아직 이런 부분에서 취약한 게 아닌가 합니다. 선수나 매니저 등 축구산업 종사자분들이 “법률서비스(Legal Service)”에 대한 필요성을 인식하지 못해서일 수도 있고, 변호사들이 현장의 수요를 파악하고 그에 대처할 만큼 충분한 능력을 갖추지 못해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쨌든 금번 이천수 선수의 발언을 통해 축구선수, 에이전트 및 구단 간의 협상과 에이전트 보수 지급에 관한 분쟁의 단면을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축구선수와 에이전트 간의 불투명한 정보교류가 어떠한 결과를 가져오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변호사의 역할은 어떠할 수 있을지에 대하여 고민해 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나름의 의미를 찾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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