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사가 유명 영화배우의 사망소식을 전하며 고인이 출연한 영화 장면 일부를 무단 방영한 것이 저작권 침해일까요?

미국에서 실제 문제된 사례입니다.  지난 1997년 미국의 유명 영화배우 로버트 미첨(Robert Mitchum)이 사망했지요.  당시 미국의 방송사들(ABC, CNN, CNN)은 뉴스프로를 통해 로버트 미첨의 사망소식을 전하면서 미첨이 출연한 “G.I. Joe”의 주요 장면을 삽입해 방영하였습니다.  “G.I. Joe”는 미첨에게 아카데미에 노미네이트되는 영예를 안겨 준 유일한 영화였지요.  그런데 “G.I. Joe”의 저작권을 보유한 회사는 자신들의 동의 없이 영화 장면을 무단으로 방영한 것이므로 저작권 침해라는 주장을 하였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미국법원은 저작권 침해가 아니라고 보았습니다.  그 근거는 바로 미국 저작권법상의  Fair Use에 해당된다는 것이지요(Fair Use의 개념과 판단 기준에 대하여는 여기를 참조).

위 사건의 경우 방송사의 의도는 로버트 미첨이라는 유명 배우의 사망 소식을 전하며 시청자들의 이해의 편의를 위해 그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영화장면을 일부 삽입한 것입니다.  “G.I. Joe”라는 영화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영화에 출여한 로버트 미첨이라는 배우가 중요한 것이었고, 로버트 미첨에 대한 소식을 전하는 과정에서 부수적으로 영화장면을 일부 삽입한 것이었습니다.

미국 법원 역시 “방송사의 행위는 로버트 미첨이 사망 소식을 시청자들에게 전달하고자 한 것이지 영화 자체를 대체(supersede)하려 한 게 아니다.  이와 같이 이 사건에서의 영화 장면의 방영은 본래의 영화에는 없던 전혀 새로운 목적과 시각에서 이루어진 것이므로 공정이용의 범주에 해당된다”고 보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영화장면을 사용한 방송사는 영리적, 상업적 성격을 지녔다는 점은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공정이용은 비영리적 목적의 경우에만 인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는 우리 대법원도 분명히 하는 점이지요.  미국의 경우는 비영리성의 범위를 매우 넓게 보는 편입니다. 영화나 코미디, 토크쇼 같은 오락프로그램의 경우와 같이 얼핏 보면 영리적 성격이 짙어 보이는 경우에도 공정이용(Fair Use)를 인정한 예가 많습니다.  사실 미국에서는 공정이용 여부를 판단할 때 영리성 여부보다는 과연 이를 이용한 자가 원 저작물을 얼마나 변형하여(transformative) 사용하였는지를 중점적으로 봅니다.  변형한 정도가 크면 클수록 영리성 여부에 대한 판단은 중요하지 않게 되는 것이지요.

얼마 전 SBS의 “신동엽의 있다!없다?” 프로가 60년대 영화 “대괴수 용가리”의 장면을 일부 삽입한 것을 두고 저작권 침해라는 판결이 나왔습니다(관련 포스트는 여기).  법원은 공정이용에 해당된다는 SBS의 주장을 배척하였지요.  그런데 법원의 판결문을 보면, 위 SBS의 프로가 “상업적, 영리적”이라거나 SBS가 위 프로를 인터넷 상에서 유료로 판매하였다는 점을 주된 이유로 들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 따지자면 과연 공정이용에 해당될 수 있는 경우가 얼마나 될까요? 현대사회에서 (저작권법이 보호하고자 하는) 창작행위는 이미 경제활동, 영리행위로 연결되어 있고 양자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표적으로 영화가 그렇고, 심지어 현대미술 작품도 결국에는 아트 갤러리를 통해 고가에 팔리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 현실에 비추어 보면, 지나치게 “영리성 유무”에 집착하게 되면 공정이용의 인정범위는 좁아질 수 밖에 없겠죠.  오히려 미국법원처럼 문제된 저작물이 어떠한 목적과 의도로 사용되었고 원 저작물에는 없는 새로운 의미와 관점이 부여되었는지에 보다 중점을 둬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그런 면에서 위 “신동엽의 있다!없다?” 사건에서는  SBS  제작진의 제작 의도가 무엇이었고 실제 어떤 식으로 그러한 의도가 구체화되었는지가 충분히 심리되었는지, 이에 대한 우리 법원의 입장은 무엇이었는지 궁금해지는 대목입니다.  미국의 “G.I Joe” 사건에서 그랬던 것과 유사하게, SBS의 경우도 유명배우인 이순재 씨의 과거 희귀 영화 출연사실을 보도하는 과정에서 ‘대괴수 용가리’의 영화장면을 사용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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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Replies to “방송사가 유명 영화배우의 사망소식을 전하며 고인이 출연한 영화 장면 일부를 무단 방영한 것이 저작권 침해일까요?”

  1. 요즘 이래 저래 “소통의 문제”가 회자되고 있습니다만, 보통 “판사는 판결문으로만 말한다”고 하지요. 그런데 실무에서도 과연 어느 정도로 자세하게 판결문을 작성해야 할지에 대해 많은 고민들이 있어 왔습니다. 민사소송은 형사소송과 달리 당사자가 주장하지 않은 내용은 판단을 법원이 알아서 주장, 판단해줄 수는 없고, 당사자가 주장하더라도 사건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으면 판단을 안 할 수도 있는 것이며, 사건의 해결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더라도 결론을 지지하는 모든 사정들을 하나같이 전부 다 판결문에 기재하여야 하는 것도 아니고 또 그럴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민사 판결문을 해석하는 데는 조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판결문에 기재되어 있지 않다고 법원이 그 점을 간과했구나, 판단하지 않았구나’라고 섣불리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이지요. 그런 의혹이랄까 의문점들은 당사자들을 대리하는 변호사들이 1차적으로 풀어야 할 문제가 아닐까 합니다. 즉 변호사가 누구보다도 열심히 법원을 설득하고 이해시키는 것이 중요하고, 그러기 위해 새로운 이론을 개발하고 해외의 논문이나 판례까지 동원할 필요도 있을 것이며, 그럼에도 판결문에 적절히 반영되지 않은 부분이 있다면 언론을 통해서라도 판결의 문제점을 언급하고(물론 적절한 수위는 지켜야겠지만요) 항소심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겠지요. 이 사건에서 SBS측의 대응이 어떠했고 앞으로는 어떠할지 주목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2. 우리 법원이 적극적으로 제작진의 의도를 따지고, 그러한 의도가 어떻게 구체화됐는지 충분히 심리하지 않는 이유가 ‘귀찮아서’ 내지는 ‘판례를 남기기 싫어서’가 아닌가 의심이 됩니다. 그러니까 SBS 사건의 경우처럼 기계적으로 공정이용에 대한 SBS의 주장은 배척하되, 자세히 따지고 들면 귀찮으니 배상금액은 터무니없이 적게 책정해 입막음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저는 판사들을 볼때마다 그들이 사법 권력의 마지막 울타리라는 생각보다는, 그냥 3급공무원이라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더군요. 사법시험 제도를 개혁하고, 로스쿨 제도를 확대해야 한다는 생각도 그래서 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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