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자 외신보도에 따르면, 헐리웃의 유명배우 로빈 윌리엄스가 자신이 출연하기로 했던 영화제작이 중단되자 그에 따른 출연기회 상실을 이유로 영화제작사에 6백만불 지급청구소송을 제기했다고 합니다.
기사에 따르면, 당초 로빈 윌리엄스는 Frank and Beans Production이 제작하는 “A Couple of Dicks”라는 코미디 영화에 출연하기로 하면서, 실제 영화 제작 여부와 상관없이 일정한 출연료(fee)를 받기로 약정했습니다. 그런데 영화는 이후 제작이 이루어지지 않았고, 이에 로빈 윌리엄스는 위 약정에 근거하여 6백만불을 지급하라는 소송을 제기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제작사가 배우나 감독 등과 계약을 체결하면서 장래 해당 배우나 감독 등의 서비스(출연/감독)를 실제 사용하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배우 등에게 대가를 지급하기로 하는 약정을 Pay-or-Play라고 합니다. 이를테면 배우와 출연계약은 체결하였으나 그 후 영화제작을 포기한 경우, 배우가 제작사에 서비스(출연)를 제공한 바 없으므로보수를 받지 않는 게 원칙이겠으나, 그러한 경우에도 보수가 지급되게 한다는 것이지요. 이는 특히 헐리웃의 유명배우나 감독의 경우 많이 쓰이는 거래입니다. 제작사 입장에서는 그런 식으로라도 유명배우등의 이름을 영화에 걸어 제작비 조달 등을 수월히 하려는 생각이 있는 것이고, 배우 입장에서는 장차 영화 제작이 중단되는 경우 그로 인한 기회비용(다른 영화출연 계약을 체결을 하지 못했던 사정)을 회수하려는 생각도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문제는 pay-or-play 조항의 의미나 법적 구속력에 대하여 분쟁이 빈번히 발생한다는 점입니다. 그 가장 큰 이유는 pay-or-play 약정이 대부분 구두에 의해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로빈 윌리엄스의 경우에도 pay-or-play 계약서는 없다고 합니다). 참 이상하지요?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가장 발달한 미국 헐리웃에서, 수십억원을 넘는 출연료 거래가 오고 가는 곳에서, 가장 잘 나간다는 배우와 그에게 고용된 엔터테인먼트 전문 변호사들이 넘쳐나는 미국에서 그와 같은 일들이 일어난다는 현실이 말이지요.
엔터테인먼트 비지니스에 계약서 작성 문화가 제대로 자리잡지 못하고 있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겠습니다. 톱스타, 톱감독, 흥행거리에 대한 제작자들 간의 순간을 다투는 치열한 경쟁이랄까, 인간적인 끈끈함 또는 믿음을 중시하는 거래계의 특성이랄까… 거기다가 일부 변호사들은 계약서 작성을 미루는 것을 오히려 하나의 전략으로 이용하기도 하고요. 하지만 소송이 시작될 즈음 되면 좋은 시절은 다 간 것이 되고 서로에게 상처만 주는 전쟁이 시작되며, 당사자들의 주머니에서는 변호사 비용으로 적지 않은 비용이 빠져 나가게 되지요.
하여튼, pay-or-play 거래를 할 때는 여러 모로 주의를 해야 합니다. 관련 내용을 계약서 기타 서면으로 남겨 놓아야 함은 물론이고, 그 구체적인 의미가 무엇인지(언제 어떠한 사유로 돈을 지급한다는 것인지) 분명히 기재하여 합니다.
이를테면 제작사 측에서는 책임을 피하고자 다음과 같은 변명을 할 수 있습니다: “당사가 귀하[배우]에게 pay-or-play라고 말한 것은 나중에 귀하와의 정식출연계약이 체결되면, 즉 출연계약의 세부사항(감독을 누구로 할지, 조연배우, 작가는 누구로 할지 등)에 대하여 전부 합의가 이루어지고 그 계약에 따라 귀하가 이행해야 할 모든 의무 또는 선행조건들이 전부 충족된 후에야 그렇게 하겠다는 의미였습니다. 그러나 이후 귀하와 출연계약 전반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지지 못하였으므로 [또는 계약서상의 선행조건들(감독섭외 등)이 이루어지지 못했으므로] 당사는 부득이 귀하와의 계약을 체결하지 않게 되었으며, 따라서 귀하에게 보수를 지급해드릴 수도 없음을 양지하시기 바랍니다”
이는 pay-or-play 조항의 법적 성격의 문제와도 연관됩니다. 위와 같은 경우 혹자(주로 배우나 감독)는 pay-or-play조항은 그 자체로서 독립된 무조건적인 계약이므로 제작사의 주장은 부당하다고 주장할 수도 있고, 혹자(주로 제작사측)는 pay-or-play 조항은 출연계약의 일부에 불과하므로 장차 출연계약이 완전히 성립하고 출연계약상의 각종 조건들이 전부 이행되어야만 이를 주장할 수 있다고 하여 제작사측의 해석을 지지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위와 같은 해석상의 애매함을 해결하는 방법은 최대한 구체적인 내용(어떠한 경우 보수가 지급되는지, 그 전제조건은 있는지 없는지)의 계약서를 작성하는 것이 최선일 것입니다. 물론 당사자들 간의 관계에 따라 계약서 작성을 요구하는 것이 사실상 어려운 경우도 있겠습니다만 그러한 경우에도 어떤 식으로든 당시의 합의 내용을 서면으로 남겨 놓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중요한 거래를 끝마치는 자리에서는 서로 웃는 얼굴로 악수만 하고 끝낼 일이 아닙니다. “회의장을 나설 때 그날 합의된 내용이 적힌 계약서를 손에 쥐고 있지 못했다면 그 날은 아무 딜(Deal)도 없었던 것이다”라는 말을 항상 염두에 둬야 합니다.
[후기 : 위 소송에서 로빈 윌리엄스는 패소했습니다. 관련 소식은 여기를 클릭하세요(2010/02/11)]
© 2008 정원일 변호사. All rights reserved. Some copyrights, photos, icons, trademarks, trade dress, or other commercial symbols that appear on this post are the property of the respective owne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