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tchmen”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

eab7b8eba6bc-2지난 주까지 미국 헐리웃에서는 Warner Bros.와 20세기 폭스사라는 거대 스튜디오 간에 피말리는 법적 분쟁이 있었습니다.  그 중심에는 Warner사가 DC Comics의 유명 만화 ‘Watchmen”을 각색한 영화 ‘ Watchmen‘이 놓여 있었는데요.  폭스측에서는 ‘Watchmen’의 판권은 원래 자신들이 것이라며 워너측을 상대로 저작권 침해 및 영화상영금지가처분 소송을 제기하고 나선 것이 사건의 발단이었습니다.  사실 위 소송은 작년 2월에 제기된 것이긴 합니다만, 워너측이 제작을 강행하여 올해 3월 개봉을 얼마 앞두고 있지 않은 상황에 이르게 되자 양측의 법적 공방은 더욱 극에 달했던 것이지요.  그러던 중 지난 12월 24일 미국 캘리포니아 지방법원은 “Watchmen에 대한 저작권은 폭스사에게 있다”는 중간판결을 내리기에 이르렀고(이를 두고 헐리웃 관계자들은 ‘크리스마스 이브의 악몽’이라고 부르더군요), 이후 (그러니까 지난 주) 양측의 극적인 합의(settlement)로 분쟁의 종지부를 찍게 되었습니다(판결문은 여기를 클릭).

Watchmen은 올해 최고의 블럭버스터로 기대를 한 몸에 모으고 있는 작품입니다.  1986년 발간된 Allen Moore/Dave Gibbons의 원작 만화 자체가 워낙 유명하고, 강렬한 비주얼적인 요소로 인해 “영화화하기는 어렵지만 일단 잘만 만들면 그 어떤 슈퍼 히어로 영화보다도 대박을 터뜨릴 수 있는 영화”로 손꼽혔지요.  그런 연유로 헐리웃의 메이저 스튜디오들 중에 왓치맨의 영화제작을 시도해보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왓치맨’의 판권이 지난 20여년간 여러 스튜디오의 손을 타면서 권리 귀속관계가 모호해졌고 결국 영화화에 성공한 워너는 폭스와의 소송이라는 예상치 못한 암초에 부딪히게 된 것이었습니다.

이번 사건의 내용을 지켜보면서 저는 영화제작을 비롯한 엔터테인먼트 비즈니스에 있어 ‘권리관계의 확인’이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지 새삼 느끼게 되었습니다.  권리관계의 확인 문제야 어느 비즈니스에서나 문제되는 것이지만 엔터테인먼트 비즈니스가 결국에는 ‘컨텐츠의 개발과 배포’라면 그 컨텐츠의 기본이 되는 저작물(만화, 소설, 음악 등)이 누구의 것이며 누구로부터 이용에 관한 동의를 받아야 되는지에 대한 확인(copyright clearance)은 사실 엔터테인먼트 비즈니스의 기본 중의 기본인 것이지요.  왓치맨 사건처럼 막대한 제작비를 들여 영화를 완성해 놓고도 상영조차 하지 못할 위험에 처하거나, (뒤에서 언급하는 바와 같이) 상영에는 성공하더라도 그 수익을 당초 예상치 못한 제3자(저작권자)와 분배해야 되는 상황에 처할 위험이 항상 도사리고 있습니다.  특히 엔터테인먼트 비지니스가 산업화되면서 투자, 제작, 배포 등의 일련의 과정이 다수 거래당사자들과의 복잡한 법률관계로 연결되어지는 상황에서 왓치맨 사건과 같은 돌발상황은 그와 같은 복잡한 법률관계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에 따른 추가적인 비용(법률비용 포함)의 발생은 말할 것도 없겠지요.

자, 그러면 지금부터 이번 사건이 어떤 경위로 발생했는지, 소송상 무엇이 쟁점이었는지, 어떻게 해결되었고 그로부터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인지 얘기해보기로 합니다.

우선 DC Comics로부터 왓치맨의 판권을 최초로 구입한 측은 폭스사였습니다.  폭스는 1990년경  DC Comics와 체결한 Option Agreement상의 권리를 행사하여 왓치맨의 판권을 구매하였지요.  폭스는 후일 매트릭스로 유명한 Joel Silver를 감독으로 선임하여 영화제작에 나섰으나 이런 저런 이유로 진척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중 폭스는 1991년, 당시 폭스사의 임원이기도 했던 유명 제작자 로렌스 고든에게 폭스가 보유하는 왓치맨에 대한 권리 일부를 양도키로 하였습니다.  단, 고든이 영화를 제작하는 경우 그 배급권은 폭스가 행사하고 일정 수익 또한 분배받기로(Profit Participation) 약정하였지요(이하 “1991년 약정”).

한편 폭스와 로렌스 고든측은 1994년 별도의 새로운 계약(이하 “1994년 약정”)을 체결하면서, 고든이 일정한 대가(Buy-Out price)를 지급하는 경우 폭스가 보유하는 왓치맨에 대한 일체의 권리를 고든측이 양도받는 것으로 합의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폭스는 고든에게 Turnaround Notice(즉, 왓치맨 프로젝트에 대한 폭스사의 독점적인 권리를 조건부로 포기 내지 유예하는 내용의 통지)를 하였습니다. Turnaround Notice에 따르면, 고든은 폭스에 Buy-Out Price를 지급해야 됨은 물론, Buy-Out Price가 지급되기 전에 ‘감독, 출연진, 스토리 등 영화의 주요 요소가 변경된 경우’에는 그와 같은 사실을 폭스측에 통보하여야 하고 이 경우 폭스는 그 자신의 선택에 따라 영화제작을 재개할 수 있는 조항(이른바 ‘Changed Elements Clause)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고든은 이후 폭스측에 Buy-Out Price를 지급한 사실도 없고, 감독이 바뀐 사정도 폭스측에 통보하지 않았지요(바로 이 점이 뒤에서 보게 되는 폭스측 주장의 핵심이 됩니다).

이후 고든은 2001년 유니버설 스튜디오와 접촉하여 영화제작을 시도하였으나 2004년 중단되었고, 이에 유니버설은 왓치맨 프로젝트를 파라마운트 픽쳐스에 넘기면서 그 때까지 투입된 개발비의 10%를 보전받고 나머지 90%의 제작비는 파라마운트가 영화제작에 들어가는 경우 보전받는 것으로 합의했습니다.

당시 파라마운트는 다른 스튜디오들이 수퍼 히어로 영화로 큰 재미를 본 것과 달리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하고 있어 슈퍼 히어로 영화 판권 매입에 매우 적극적이었고, 그 와중에 고든과 함께 왓치맨 영화를 제작하고자 했던 것이었지요.  그러나 파라마운트 역시 후일 예산 문제로 제작을 중단하게 됩니다(2005년).

바로 이 때 워너 브러더스가 등장하여 고든과 파라마운트가 진행하던 왓치맨 프로젝트를 인수하게 됩니다.  워너는 2006년 고든측이 왓치맨에 대한 판권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하고 고든과 판권 매입에 관한 약정을 체결하게 되지요.  그리고 그 약정에 근거하여 제작된 왓치맨 영화가 바로 올 3월 개봉 예정인 영화 “Watchmen”인 것입니다.

그러던 중 갑자기 폭스가 워너를 상대로 저작권침해 소송을 제기하고 나섭니다.  그 때는 2008년 2월, 이미 워너가 왓치맨 제작을 상당부분 완성했다는 사실이 헐리웃에 널리 알려진 때였지요.

자, 그러면 소송에서 제기된 폭스와 워너측 주장의 핵심은 무엇이었을까요?  폭스가 제출한 소장에 따르면 “폭스는 1990년경 DC Comics로부터 왓치맨 영화의 판권을 매입한 유일한 권리자이다.  워너는 로렌스 고든으로부터 왓치맨에 대한 판권을 매입했다고 하지만, 로렌스 고든은 자기가 갖고 있지도 않은 권리(판권)를 워너측에 판 것이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대하여 워너측은 “폭스는 로렌스 고든과 체결한 1991년 약정과 1994년 약정, 그리고 그에 따른 Turnaround Notice에 의해 왓치맨에 대한 모든 권리를 포기한 바 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사실 워너측 입장에서 보면 억울해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입니다.  즉 워너가 왓치맨을 제작하고 있는 사실이 널리 알려져 있는 동안에도 폭스측에서는 아무런 권리주장을 하고 있지 않다가 영화 제작이 사실상 종료되고 영화 관계자들로부터 좋은 평을 받게 되자 그제서야 권리주장을 하고 나섰으니까 말이지요(심지어 재판 과정에서 밝혀진 바에 따르면, 폭스측 임원의 내부 이메일에는 워너가 사용하는 왓치맨 대본이 ‘형편없다’며 비웃기까지 했다더군요).  이에 워너는 “그 동안 잠잠코 있다가 영화가 완성되고 흥행을 할 것 같으니까 그에 따른 이득을 손을 넣고자 하는 불순한 의도”라며 맹비난을 하였습니다(일종의 무임승차란 얘기지요).

당시의 신문기사들을 훑어보면 헐리웃 관계자들 사이에는 워너측을 지지하는 입장이 더 많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사실 이 사건처럼 거대 스튜디오들이 서로를 상대로 법적 소송을 제기하여 ‘끝까지 가는’ 경우는 그리 흔한 일은 아니라고 하더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폭스가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워너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이유는, “포기하기에는 법률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이익(merits)이 너무 컸기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왓치맨과 같은 슈퍼 히어로를 소재로 한 영화는 최근 헐리웃의 흥행 보증수표로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단순한 박스 오피스뿐만 아니라, 부가판권에 따른 수익이 이만저만이 아니지요. 왓치맨 사건은 단순한 ‘영화 한 편’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그와 같은 (속편은 물론) 부가판권에 따른 막대한 이득을 누가 갖을 것인지에 대한 중요한 분쟁이었던 것입니다.

또한 법률적인 면에서 보더라도 폭스측의 승소 가능성은 꽤 높아 보였습니다.  즉, 그 동안 진행되어 온 사실관계와는 상관없이, 계약서들의 내용 자체만 놓고 보면 누가 보아도 폭스가 여전히 판권을 보유하고 있음이 분명해 보였던 것이지요.  물론 이에 대하여 워너측 변호사들은 “1991년 약정, 1994년 약정은 폭스가 왓치맨에 대한 권리를 종국적으로 포기한 게 분명하다”고 주장했지만, 미국 법원은 (그리고 제가 보기에도) 1994년 약정, 특히 Turnaround Notice에 따르면 “폭스가 왓치맨에 대한 판권(적어도 배포권)을 여전히 보유하고 있다”는 점은 폭스나 고든 양쪽 모두가 분명히 인식한 사항이었다고 판시하였습니다(즉, 1994년 약정과 Turnaround Notice에 따르면 고든은 Buy-Out Price를 폭스에 지급해야만 왓치맨에 관한 권리를 취득할 수 있는 것인데, 이를 지급한 바가 없으므로 폭스가 여전히 권리자라는 것이지요).

물론 이 부분의 문제를 조금 더 깊이 파고들면, 사실 도대체 폭스와 고든 중 누가 왓치맨에 대한 권리자인지 사실 좀 불분명하기는 해 보입니다.  그 이유는 1991년 약정과 1994년 약정이 사뭇 배치되는 면이 있어 보이기 때문입니다.  워너측의 해석은 1991년 약정에 의해 왓치맨에 대한 폭스의 권리는 고든에게 넘어왔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폭스가 보유’하는 판권을 고든이 매입하기로 한 1994년 약정과 Turnaround Notice의 내용은 어떻게 설명될 수 있는가의 문제가 생기는데, 이에 대한 워너와 폭스측의 답변은 무엇이었을까요?  바로 “(1994년 당시) 폭스측에서 속였거나 고든측의 변호사가 실수를 했다”는 것입니다.  즉, 고든측은 1994년 약정을 체결하기 전에 폭스측으로부터 왓치맨에 대한 Chain of Title(권리근거서류)을 받았는데 거기에는 문제되는 1991년 약정이 빠져 있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즉, 고든의 변호사가 1991년 약정서를 받아 보았다면 그와 배치되는 내용의 1994년 약정을 체결할 이유가 없었다는 것이지요(즉 1991년 약정에 따르면 왓치맨의 권리자는 고든이므로 고든이 왓치맨에 대한 권리를 이전받는 내용의 1994년 약정을 체결할 이유가 없었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드는 부분은, (1991년 약정을 몰랐다는 고든측의 주장과 달리) 고든측과 워너가 체결한 2006년도 약정에는 ‘1991년 약정이 체결된 사실’이 기재되어 있었고 워너는 1991년 약정의 내용을 충실히 이행하는 것으로 기재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사실 워너와 고든측의 주장처럼 ‘1991년 약정’이 고든에게 왓치맨에 대한 권리를 확정적으로 준 것이라는 점은 반드시 옳은 얘기는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왜냐하면 적어도 동 계약서상 왓치맨에 대한 ‘배포권’만큼은 명시적으로 폭스측에 귀속되는 것으로 기재되어 있기 때문이지요(이런 연유로 미국 법원은 “폭스는 적어도 배포권을 갖는다”며 워너측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1991년 약정서의 내용을 보니 고든은 권리 이전의 대가로 일정금액을 폭스측에 지급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이를 지급하였는지는 분명치 않습니다(오히려 1994년의 Buy-Out Price와 마찬가지로 지급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더 높아 보이네요) .

결국 이 사건은 만약 워너가 고든측과 계약을 체결하면서 고든이 왓치맨에 대한 판권을 실제로 보유하고 있는지, 그 근거서류는 무엇인지, 그 근거서류상 고든이 이행하여야 할 의무가 전부 이행되어 고든이 판권을 완전히 취득하였는지 여부를 보다 정확히 심사(Clear)했다면 피할 수 있었던 일이었습니다(그것이 변호사의 실수인지, 워너측의 실수인지, 고든측의 실수 내지 의도적인 묵비에 따른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말입니다).  바로 이 점이 우리에게 주는 제일 큰 교훈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자, 그러면 워너와 폭스는 어떤 내용으로 합의를 보았을까요?  공식적으로 발표되지는 않았습니다만, LA 타임지의 보도에 따르면 “폭스측이 영화의 총수입의 8.5%를 지급받고, 여기에 덧붙여 150만 달러의 기투입 제작비를 보전받는 것으로 합의되었다”고 하네요.

일각에서는 이번 사건을 두고, “폭스측의 과감한 소송전략”이 주효한 반면, “워너측은 지나친 고집으로 조속한 문제해결의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폭스측에서는 워너가 “올해 3월 개봉”을 얼마 앞두지 않은 상황에서 법원에 상영금지가처분을 신청하는 등 강공책을 택하여 결국 법원으로부터 유리한 내용의 중간판결을 얻어낸 반면, 워너측은 (아마도 관련 계약서상 자신들에게 법적으로 불리한 부분이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서도) 폭스측과의 화해에 나서기보다는 “협상불가/개봉강행”이라는 강수를 쓴 것이 결국에는 더 큰 손실을 가져왔다는 지적이 있는 것이지요.

어찌되었건 폭스는 올해 3월 개봉일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반면 워너측은 이번 일로 또 다른 송사를 준비 중에 있다고 합니다.  즉, 이번에는 워너가 고든측(혹은 그 변호사들)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준비 중이라는 것이지요.  고든이 계약서상 자신이 왓치맨의 판권 보유자라는 점에 대해 한 진술보장이 사실과 다르므로 그에 따른 손해를 배상하라는 내용의 소송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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