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신동엽의 있다! 없다?”, 60년대 영화 “대괴수 용가리” 무단 인용을 이유로 제기된 저작권 침해 및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패소

지난 6월 5일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흥미로운 판결이 나왔습니다.  바로 SBS의 “신동엽의 있다! 없다?” 프로가 1960년대 영화 “대괴수 용가리” 중 3분 정도의 분량을 무단 인용한 것을 두고 영화 저작권자의 상속인으로부터 제기된 저작권 침해 소송에서 법원이 저작권자의 손을 들어 SBS에게 손해배상 판결을 내린 것입니다.

SBS 측에서는 위 영화를 일부 인용하여 방영한 것은 저작권법상의 공정이용에 해당한다고 주장하였지만, 법원은 아래와 같이 판시하며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구 저작권법 제28호는 공표된 저작물은 보도, 비평, 교육, 연구 등을 위하여는 정당한 범위 안에서 공정한 관행에 합치되게 이를 인용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는바, 정당한 범위 안에서 공정한 관행에 합치되게 인용한 것인가의 여부는 인용의 목적, 저작물의 성질, 인용된 내용과 분량, 피인용저작물을 수록한 방법과 형태, 독자의 일반적 관념, 원저작물에 대한 수요를 대체하는지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할 것이고, 이 경우 반드시 비영리적인 목적을 위한 이용만이 인정될 수 있는 것은 아니라 할 것이지만, 영리적인 목적을 위한 이용은 비영리적 목적을 위한 이용의 경우에 비하여 자유이용이 허용되는 범위가 상당히 좁아진다(대법원 1997.11.25. 선고 97도2227 판결 등 참조).  살피건대 피고들이 이 사건 프로그램에서 이 사건 영화를 일부 인용한 것이 시청자들에게 정보와 재미를 주기 위한 목적이었다고 하더라도 그 이용의 성격은 상업적, 영리적인 점, 피고 SBS가 자신의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하여 유료로 이 사건 프로그램을 방송한 점, 피고들이 원고로부터 이 사건 영화의 인용에 대한 동의를 받는 것이 어렵지 아니하였던 점 등을 고려할 때, 피고들의 위 행위가 공정이용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다”

위 공정이용에 관한 판시는 미국에서의 공정이용(Fair Use)의 판단기준과 유사해 보입니다(미국에서의 공정이용에 관하여는 여기를 클릭하세요).  법원은 프로그램이 상업적 성격을 띄고 있다는 점과 저작권자의 허락을 쉽게 받을 수 있다는 점을 판단근거로 하면서, 저작권자의 저작권 보호에 보다 무게를 두고 판단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물론 이는 원고가 정당한 저작권자임을 전제로 하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SBS 입장, 또는 공정이용의 폭넓은 적용을 주장하는 입장에 서서 보면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이네요.  위 영화가 인용되어 방영된 프로그램은 “신동엽의 있다! 없다?” 중 “스타 UCC 코너”라고 스타의 숨은 이야기를 발굴하는 코너였는데요, 당일은 연기자 이순재 씨에 관한 얘기였습니다.  즉 미국의 어느 시청자로부터 ‘이순재 씨가 어느 괴수 영화에 출연하였다’는 제보를 받고 이를 확인하고자 제작하였던 것이라고 합니다(방영 당시의 뉴스기사는 여기).

이와 같이 문제된 프로가 위 영화를 인용한 이유는 그 영화를 광고하거나 이용하려 한 것이 아니라 이순재씨가 과거 괴수영화에 출연한 사실이 있는지 그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는 데 있었습니다(즉 이순재씨의 출연경력에 관한 정보 제공이 주이고, 영화 장면의 삽입은 그와 같은 정보 제공을 위한 필요수단(종)에 그치는 것이지요).  이와 같은 사정은 SBS 입장에서 위와 같은 기획 의도에 비추어 SBS는 문제된 영화장면을 새로운 의미와 시각에서 사용하였다는 주장을 할 여지가 있게 합니다. 그리고 이는 공정이용을 인정하는 중요한 포인트가 될 수 있는 것이지요.

이 밖에도 과연 “3분”이라는 분량이 과연 공정이용을 부인할 만큼의 분량인지, 애당초 우리나라에서는 대중적으로 알려져 있지 않고 필름조차 존재하지 않는 영화장면을 미국에서 입수하여 방영한 것을 두고 저작권자의 경제적 이용가치를 침해하였다거나 대체하였다고 볼 수 있는 것인지, SBS가 인터넷을 통해 해당 프로를 유료로 판매한 것이 민영방송이 제작한 프로그램의 공정이용 여부를 판단하는 데 있어 본질적인 부분인지에 대해서도 법정에서 다툼이 있었을 것으로 보이나 아쉽게도 판결문은 SBS의 주장을 기각하였을 뿐 이에 대해서까지 자세한 언급을 하지는 않고 있습니다.

항소 여부 등 SBS의 입장은 아직까지 확인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법원이 SBS에게 선고한 손해배상액은 얼마일까요?  300만원입니다.  원고는 원래 1억1천만원을 손해배상금으로 청구했습니다.  너무나 큰 차이이지요?  이렇듯 저작 침해와 관련된 소송에서 우리나라 법원의 실무는 손해배상액을 (일반인의 예측보다는) 상당부분 적게 책정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는 우리나라 손해배상법의 손해산정법리에 따른 불가피한 면이기는 합니다.  그리하여 엔터테인먼트 산업 종사자들 사이에서는 저작권 이슈가 문제되는 경우 “일단 저지르고 보자”는 식의 일처리도 종종 보입니다(즉, 일단 무단 사용하고, 나중에 “만에 하나” 저작권자로부터 이의제기가 들어오면 법원이 정한 “(무단 사용으로 얻는 직접적 이익 또는 이슈화를 통해 얻은 간접적 이익보다 매우 적은) 손해배상금”을 지불하면 된다는 식).

한편 위 사건을 재판한 법원은 서울남부지방법원입니다.  방송과 관련된 저작권 사건들은 거의 대부분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다루고 있는데요, 이는 우리나라 방송사들의 본점 소재지를 관할하는 법원이 남부지방법원이기 때문입니다.  마치 미국에서는 LA헐리웃을 관할하는 9th Circuit이 엔터테인먼트와 관련된 중요사건을 많이 담당하는 것과 비슷하지요.  그래서 미국에서는 9th Circuit을 “Hollywood Circuit”이라고도 부릅니다.  그만큼 엔터테인먼트 사건이 많을 뿐만 아니라 판결내용도 엔터테인먼트 업계에 유리한 판결들을 많이 내린다는 것이지요.  이를테면 퍼블리시티권 사건을 보더라도 퍼블리시티권을 옹호하는 판결을 많이 내린 법원은 누가 뭐래도 9th Circuit입니다.  다른 지역의 항소법원들은 퍼블리시티권에 대해 소극적인 판결을 많이 내리는 편이라고도 합니다.  최근 크게 문제되고 있는  Fantasy Sports 사건 역시 당초 9th Circuit에서 담당했다면 아마도 퍼블리티권 침해가 인정되었을 것이라는 얘기들도 많습니다.

후기) 미국 사례 중에 이 사건에 참고할 만한 것이 있어 추가하였습니다.  바로 미국 방송사들이 로버트 미첨의 사망 소식을 전하며 고인이 출연한 영화(G.I. Joe)의 일부 장면을 무단 삽입 방영한 사건인데요, 미국 법원은 공정이용에 해당된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위 사건에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있겠습니다만, 공정이용과 관련된 미국과 우리나라 법원의 태도와 판단기준을 비교해본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관련 글은 여기를 클릭하세요(2008. 6.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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