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에 포함된 인터뷰 장면이 인터뷰자의 명예를 훼손한 것인지-마이클 무어의 ‘Fahrenheit 9/11’ defamation case

몇년전 다큐멘터리 제작자 마이클 무어(Michael Moore)의 “Fahrenheit 9/11″이 전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던 기억이 납니다.  마이클 무어라는 사람에 대하여는 저널리즘을 가장한 선동가 내지 사업가로 폄하하는 인물도 적지 않지만, 어쨌든 동 다큐멘터리가 불러 일으켰던 사회적인 이슈는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런데 얼마 전 이라크 퇴역장병이 위 다큐멘터리가 자신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미국법원에 소송을 제기한 적이 있습니다. 피터 데이먼이라는 퇴역장병은 주장하길, 마이클 무어가 자신과 NBC의 인터뷰 장면을 다큐멘터리에 삽입하여 마치 자신이 무어의 주장(반전사상이나 부시행정부와 군부에 대한 비판)에 동조하는 것처럼 보여지게 했다는 것이지요.

피터 데이먼은 이라크 파병근무 중 양팔을 잃는 부상을 입은 인물입니다.  문제의 장면은 피터 데이먼이 군병원에 입원하여 치료를 받고 있을 당시 NBC의 기자에게 부상의 고통을 얘기하고 “병원이 주는 진통제가 효과가 있다”는 얘기를 하는 대목이었습니다.  마이클 무어는 “Fahrenheit 9/11″에서 부시가 퇴역장병에 대한 의료지원이나 복지에 소홀하였음을 나레이션하면서 “전쟁 초기 13개월만에 5천명이나 부상을 당하였다”는 자막과 함께 데이먼의 위 인터뷰 내용을 내보낸 것입니다.  평소 군대사회에서 명망이 있던 데이먼으로서는 자신의 과거 인터뷰 장면이 뜻하지 않게 반전을 옹호하는 다큐멘터리에 삽입되어 화가 났던 것이고, 이것이 마치 자신이 무어의 논지에 동지하는 것처럼 보여 퇴역장병으로서의 명예가 훼손되었다고 소송을 제기한 것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최근 미국 캘리포니아 법원은 데이먼의 주장을 기각하고, 무어의 다큐멘터리가 데이먼의 명예를 훼손한 것은 아니라고 판결하였습니다.

법원은 데이먼의 주장이 맞는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데이먼이 출연한 장면뿐만 아니라 문제되는 다큐멘터리의 전체 텍스트를 감안하여 이를 판단하여야 한다고 전제한 후, 전체적으로 데이먼은 위 다큐멘터리에 출연하는 50여명의 인터뷰자들 중의 한명에 불과하고, 그 분량도 16초에 불과하며, 데이먼이 반전사상이나 부시정부의 정책에 대하여 명시적인 의사표현을 한 것도 없다는 점, 다큐멘터리에 출연하는 모든 사람들이 전부 무어의 사상에 동조하는 사람들도 아니라는 점(이를테면  부시대통령, 체니 부통령의 장면도 다큐멘터리에 포함되었음) 등을 주목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일반적인 상식을 지닌 시청자나, 데이먼이 속해 있는 군대사회의 구성원들 어느 누구도 인터뷰장면이 실린 데이먼이 무어의 반전사상에 동의한 것이라고 인식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보았고, 따라서 데이먼의 명예가 훼손되었거나 시청자들에게 데이먼에 대하여 허위의 정보를 제공한 것이 없다고 보았던 것입니다.

다큐멘터리나 영화와 같이 실존하는 인물의 이야기를 소재로 삼거나 story telling상 실존인물을 언급하거나 그를 연상케 하는 장면들이 불가피하게 포함되는 경우 실존인물에 대한 명예훼손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문제는 여러 차례있었지요.  작년에는 ‘영화 실미도 사건’이 이른바 ‘북파 공작원들’로 묘사된 인물들의 명예를 훼손한 것이 아닌지 문제가 되었었고, 법원은 명예훼손이 아니라고 판시한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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