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크로싱’, 상영금지등가처분 신청 제기 당해 – 시나리오의 저작권 침해와 실존 인물의 영화화 문제

지난 14일, 이광훈 감독이 현재 상영중인 영화 ‘크로싱’의 김태균 감독, 제작/배급사 등을 상대로 ‘영화상영등 금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습니다(관련 기사는 여기).  이광훈 감독측의 주장은 “자신이 ‘크로싱’의 모티브가 된 유상준 씨와 영화화에 관한 계약을 체결하고 3년 간 ‘인간의 조건’이라는 이름으로 그에 관한 시나리오 작업을 완성하였는데, 김태균 감독을 비롯한 ‘크로싱’ 제작자 측이 자신은 물론 유상준 씨의 동의도 없이 유상준 씨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 ‘크로싱’을 제작/상영하여 ‘인간의 조건’ 시나리오에 관한 자신의 저작권을 침해하였다”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에 대해 ‘크로싱’ 측은 (i) ‘크로싱’은 유상준 씨 한 사람만을 모티브로 한 영화가 아니라 수많은 탈북자의 사연을 기초로 한 것으로서 자신들은 유상준 씨를 만나본 사실도 없고, (ii)유상준 씨와 이광훈 감독이 영화화에 관한 계약을 체결했고 이광훈 감독이 ‘인간의 조건’이라는 시나리오를 완성했다는 사실도 최근 이광훈 씨측의 언론보도를 통해 비로소 알게 되었다고 하네요(제작사측의 반박 내용은 여기를 참조).

이광훈 감독측의 설명은, 자신의 시나리오에 대한 저작권을 침해하였다는 것인지, 자신과 유상준 씨 사이의 영화화에 관한 계약상 권리를 침해하였다는 것인지, 아니면 둘 다라는 것인지 다소 불명확해 보이기는 합니다.

아무튼, 시나리오에 대해서도 저작권이 인정되는 것이 일반적인 것은 맞지만, 시나리오의 저작권이 침해되었다고 하려면 상대방이 자신의 시나리오에 의거하여 그와 실질적으로 유사한 내용의 시나리오, 영화 등을 제작하여야 합니다.  제작사측이 자신들은 이광훈 감독의 시나리오를 보지도, 알지도 못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그에 “의거”한 바가 없다는 것이고, ‘크로싱’의 내용이 유상준씨의 내용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라는 설명은 곧 ‘실질적으로 유사하지 않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지요.

한편 이광훈 감독이 “‘크로싱’은 유상준씨의 동의 없이 제작되었다’고 주장하는 부분은, ‘실존인물의 영화화’와 관련된 이슈를 떠올리게 합니다.  실존인물의 이야기를 영화화하는 경우에는 많은 경우에 있어 명예훼손이나 사생활(privacy)침해 문제가 제기될 수 있으므로 사전에 본인으로부터 허락을 받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그러나 예외적으로 그 인물이 공적인 인물이거나 표현된 내용이 상당부분 변형(transformative)되어 있거나, 명예훼손/사생활 침해와 무관한 내용이라면 동의가 없어도 무방할 것입니다.

또한 영화에 명예훼손적인 내용이 들어 있다 하더라도 영화제작자측이 그것이 사실이라고 믿었고 그와 같은 믿음에 상당한 이유가 있었다면 이 경우에도 명예훼손에 따른 법적 책임은 지지 않게 됩니다(이를테면 2005년 영화 ‘실미도사건’에서는 영화가 실존인물인 684부대원들의 명예를 훼손한 것이 아닌지 문제되었으나, 법원은 “영화제작자는 문제되는 영화 내용이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으므로 명예훼손의 책임이 없다”고 판단하였지요).

마지막으로 이 사건과 관련하여 떠오르는 법률이슈로는 이른바 “제3자에 의한 채권침해”를 들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이광훈 감독이 자신과 유상준 씨 간의 영화화에 관한 계약이 김태균 감독이 ‘크로싱’을 제작함으로써 침해되었다고 주장하는 경우입니다.  얼마전 피겨스케이팅 김연아 선수를 둘러썬 신,구 에이전시 간의 소송에서, 미국의 에이전시가 한국의 에이전시로 인해 자신과 김연아 선수 간의 에이전트 계약이 해지되어 그에 따른 권리가 침해되었다며 소송을 제기한 사례가 있었지요(관련 포스트는 여기). 그러나 이 사건은 김태균 감독측이 유상준씨로 하여금 이광훈 감독과의 영화화계약을 파기하도록 종용한 경우도 아니고, (김태균 감독 측에 따르면) 그와 같은 영화화계약이 체결되었다는 사실도 알지 못했고, 김태균 감독 자신이 유상준씨와 영화화계약을 체결했던 것도 아니므로 ‘제3자에 의한 채권침해’는 성립하기 어렵겠네요.

영화계에서는 영화상영금지가처분 신청이 종종 제기되기도 합니다만 이것이 받아들여지는 예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가처분신청’이 받아들여지는 경우 피신청인(영화사측)이 받는 고통과 경제적 손실이 막대할 수 있으므로, 법원은 가처분 발령에 신중을 기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 2008 정원일 변호사. All rights reserved. Some copyrights, photos, icons, trademarks, trade dress, or other commercial symbols that appear on this post are the property of the respective owners.

Leave a Reply

Fill in your details below or click an icon to log in:

WordPress.com Log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WordPress.com account. Log Out / Change )

Twitter picture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Twitter account. Log Out / Change )

Facebook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Facebook account. Log Out / Change )

Google+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Google+ account. Log Out / Change )

Connecting to %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