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Makes the Copy? 네트워크를 이용한 TV프로그램의 녹화행위가 저작권 침해에 해당되는지에 관한 각국의 재판례 – 미국의 Cablevision 사건에 대한 연방대법원의 판결, 엔탈서비스에 대한 서울고등법원 판결, 그리고 일본 지적재산고등재판소의 로쿠라쿠 판결

지난 6월 29일, 미국 연방대법원은 향후 방송과 컨텐츠 유통 비즈니스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칠 판결을 내렸습니다.  바로 RS-DVR(Remote Storage-DVR. 국내에서는 네트워크 PVR이라는 용어가 사용되기도 합니다)을 두고 Cablevison과 영화제작사등 컨텐츠 제작사 간에 벌어진 저작권 침해 소송에서 컨텐츠 제작사 측의 상고를 기각한 것입니다.  케이블 방송사인 케이블비전에서 제공하는 RS-DVR 서비스는 케이블 방송 시청자로 하여금 자신이 원하는 TV 프로그램을 케이블방송사에 설치된 서버에 녹화할 수 있게 하는 서비스입니다.  종래 TV시청자들은 셋탑박스와 같은 고가의 DVR기기를 구입하여야만 했는데 비해 RS-DVR은  그와 같은 부담 없이 저렴한 가격으로 예약녹화등을 할 수 있게 되는 장점이 있습니다.  반면 방송사 등 컨텐츠 제작자측에서는 이로 인해 유료VOD서비스에 심각한 타격이 오지 않을까 염려하였고, 급기야 제작자측에서 케이블비전을 상대로 저작권침해 소송을 제기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1심에서는 컨텐트 제작자측의 승리였습니다.  하지만 항소심 법원은 1심을 파기하고 케이블비전측의 손을 들어주었지요(관련 포스트는 여기를 클릭).  컨텐트제작자측은 연방대법원에 상고를 하였으나, 연방대법원은 상고를 받아들이지 않음으로써 이 사건은 종지부를 찍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RS-DVR과 같이 네트워트를 이용한 TV프로그램의 녹화와 재생이 저작권침해에 해당되는지에 대하여는 세계 여러나라에서 유사 소송들이 있어 왔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그렇고 일본에서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그 결과는 반드시 일치하지만은 않는 것 같습니다.  이는 아마도 문제된 서비스의 구조적인 차이나 법령의 차이에 따른 결과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이와 같은 부류의 사건의 가장 핵심적이고 기본적인 이슈에 대한 각국 판사들의 시각차이 또한 상당부분 작용한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 이슈가 뭐냐고요?  바로 “Who Makes the Copy?(누가 복제행위의 주체인가?)”의 문제입니다.

1. 미국의 경우

미국의 경우는 위 케이블비전 사건이 RS-DVR과 관련된 유일한 재판례로 알려져 있습니다.  재판과정에서의 핵심 쟁점은 과연 “누구를 복제행위의 주체로 볼 것인가, 이용자인가 아니면 서비스제공자인 케이블방송사인가”에 있었습니다.  왜 이게 문제되냐고요?  그 이면에는 바로 저작권법상의 공정이용 내지 사적복제의 원칙이 놓여져 있습니다.

TV시청자가 자신이 시청하는 프로그램을 VCR이나 DVR을 이용하여 개인적으로 녹화하여 재생하는 것은 공정이용 내지 사적복제에 해당하여 적법한 행위입니다.  그와 같은 행위가 저작권을 침해하는 복제행위가 아니라는 데는 이론이 없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네트워크를 이용한 RS-DVR에서도 마찬가지의 이슈가 생기게 됩니다.  TV시청자가 집 안에 있는 VCR이나 DVR을 이용하여 TV프로그램을 녹화하는 거나 원격지에 있는 서버를 이용하여 프로그램을 녹화하는 거나, 결국에는 시청자 개인이 사적으로 녹화하는 것에 불과하지 않느냐는 의문 말이지요.  그런 연유에서, 컨텐츠제작자측은 위와 같은 사적복제에 관한 이슈를 피하기 위해 “복제행위의 주체는 이용자 개개인이 아니라 서비스제공자인 케이블비전이다”라는 주장을 하고 나서게 된 것입니다(저작권자들이 P2P서비스 제공자들을 상대로는 ‘저작권침해 방조’를 주장한 것과는 차이가 나는 대목입니다.  P2P서비스의 경우에는 이용자들의 행위 자체가 저작권침해행위에 해당되므로 서비스제공자들을 상대로는 ‘방조’의 책임을 물어도 무방했지만, RS-DVR 사건에 있어서는 사정이 달랐던 것입니다).

이에 대해 1심 법원은 “복제행위자는 서비스제공자인 케이블비전이다”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리고 그 근거로 케이블비전이 복제장치를 소유하고 관리하고 있음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항소심 법원은 정반대의 입장을 취했습니다.  항소심 법원은 “복제장치를 소유, 관리하고 있다는 것만으로 복제행위 주체로 볼 수 없다”면서 “이용자가 VCR을 이용하여 녹화, 재생하는 것이나 RS-DVR을 이용하는 것이나 달리 볼 이유가 없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이후 연방대법원에 제출된 정부측 의견서 또한 “복제행위의 주체는 서비스이용자 개개인이다”라는 입장을 취하였습니다.  동 의견서는 RS-DVR과 VOD서비스를 구분하면서, VOD서비스의 경우에는 이용자 개개인의 복사행위는 물론 복사요청행위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RS-DVR과 구별된다면서, 복사장치가 어디에 위치하느냐(local이냐 network냐)는 복사주체를 판단하는 요소로는 부적절하다고 보았습니다.  이를테면 자기 집에 있는 복사기를 이용하든, 친구네 집에 있는 복사기를 이용하든, 복사행위의 주체에는 차이가 없다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연방대법원은 저작권자측의 상고를 받아들이지 않음으로써, 항소심 법원의 판단에 잘못이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였습니다.  이로써 케이블비전사를 비롯한 여타 업체들의 RS-DVR서비스는 탄력을 받을 전망입니다.

2. 우리나라의 경우

우리나라에서도 얼마전 유사한 분쟁이 있었는데요, 바로 ‘엔탈서비스‘라는 원격 방송프로그램 저장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와 MBC 사이에 벌어진 소송이 그것입니다.

‘엔탈서비스’는 이용자들이 서비스제공자가 웹사이트에 올려놓은 TV편성표를 보고 해당 프로그램을 클릭하면, 서비스제공자는 자신의 컴퓨터와 서버, 프로그램 등을 이용하여 해당 프로그램을 녹화한 후 이를 녹화를 요청한 이용자에게 전송하는 서비스라고 합니다.

이에 대해 서울고등법원은 지난 5월 30일 “엔탈서비스는 저작권침해 행위에 해당된다”고 판결하였습니다(관련 기사는 여기를 클릭).  법원은  “TV방송을 디지털형태로 전환하는 30여개의 PC의 작동을 점검·감시하고 장치의 보수와 교체 등을 운영자들이 전체적으로 담당하는 점에서 이용자들이 녹화기기를 점유하고 통제·관리하는 VCR과 다르다”면서 “이 경우 복사행위의 주체는 서비스 이용자가 아니라 서비스제공자”라고 판시했습니다.  아울러 “가사 복사행위의 주체를 서비스이용자 개개인으로 보더라도 엔탈서비스를 이용하는 복제행위는 사적복제의 범위를 넘는 것이어서 위법하다”는 판시도 하였습니다(판결문은 여기를 클릭).

그런데 서비스제공자가 복제행위의 주체라고 판단한 근거로 “녹화기기의 점유와 통제”를 거론한 것은 뭔가 부자연스러운 부분이 있습니다. ‘녹화기기’의 점유와 통제와  ‘녹화라는 행위’의 주체는 서로 차원을 달리하는 문제가 아닌가 하기 때문입니다.  녹화행위라는 것이 반드시 자기가 점유, 통제하는 기기를 통해서만이 가능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남의 것’을 가지고도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만약 엔탈서비스 자체는 개시되었지만 이용자들로부터는 아직 아무런 프로그램 선택(녹화지시)가 없는 경우에는 어떨까요?  이 경우에도 서비스제공자는 엔탈서비스라는 장치를 제공하였고 이를 점유, 통제하고 있으므로 복제행위가 일어났다고 봐야 할까요?  실제 복제행위는 이용자 개개인의 의욕과 그에 따른 지시가 없는 한 물리적으로 일어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서비스제공자가 제공하였다는 서비스 내지 녹화기기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그와 같은 이용자들의 의욕과 지시에 종속되는 자동화된 기술과정의 성격이 강한 것이지요.  그런 이용자 개개인의 의욕 내지 의지를 배제한 채 복제에 이용되는 도구가 누구의 점유, 통제하에 있느냐를 가지고 복제행위자를 가리겠다는 생각은 다분희 의제적이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물론 서비스제공자가 영리의 목적으로 그와 같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을 복제행위의 주체로 보는 입장도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영리의 목적”을 따지자면 VCR이나 DVR을 제조, 판매하는 회사도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그렇다면 VCR이나 DVR 제조사들도 복제행위의 주체인가요?)

나아가 법원이 “(가사 복제행위자를 이용자 개개인으로 보더라도) 사적복제의 범위를 넘는 위법한 행위에 해당된다”고 판시한 부분도 적지 않은 의문을 안겨주는 대목입니다.  우선 판결문이 열거하고 있는 근거는 다음과 같습니다:

(i) 이용자들이 서비스제공자로부터 전송받은 프로그램 파일을 P2P사이트에 업로드하여 저작권을 침해하는 사례가 있다

(ii) 서비스 가입자격에 제한이 없다

(iii) MBC의 방송프로그램 중 드라마, 다큐멘터리 등은 창작성이 높고 제작에 상당한 비용과 시간이 투자되는 등 그 저작권 보호가 절실하다

(iv) 디지털기술의 발달로 엔탈서비스를 통한 복제물과 지상파TV를 통한 방송물 사이에 영상이나 음향 면에서 큰 차이가 없다

(v) 엔탈서비스로 인해 방송사의 유로 VOD서비스나 비디오/DVD매출이 크게 감소할 것이 명백하다

그러나 위 (i)의 사유는 서비스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서비스를 통한 복제행위 후의 사정에 불과합니다.  그와 같은 행위는 당연히 저작권침해가 되겠지만, 이는 위 서비스를 통한 복제행위 자체가 위법해서가 아니라 (그 후에 이루어진) p2p를 통한 파일 업로드 행위가 위법하기 때문입니다.  위 (ii)의 사유도 문제가 있습니다.  이용자격의 제한 여부를 놓고 이용행위의 적법성을 따지는 것은 무리가 있어 보이기 때문입니다.  문제가 되는 행위(서비스)가 적법하다면 그 이용자격을 제한하든 말든 문제될 게 있을까요?   (iii)의 사유는, 기술개발에 관여하시는 분들 입장에서는 힘빠지는(?) 부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입니다.  고도의 창작성이나 상당한 비용과 시간을 투자하는 것은 방송사뿐만 아니라 기술개발자분들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방송사측의 저작권보호도 필요하겠지만 새로운 기술의 개발을 장려하고 보호할 필요도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문제되는 행위가 사적복제행위에 해당되는지가 첨예하게 다투어지고 그에 따라 저작권자와 기술개발자 사이의 이해가 극명히 갈리는 대목에 있어 ‘저작권자 보호의 필요성’을 근거로 드는 것은 다분히 ‘이미 내려진 결론에 끼워 맞추려는 논리’가 아니냐는 비판이 있을 수 있어 보입니다.  (iv) 부분 또한, 문제되는 복제행위 자체가 사적복제로서 적법하다면 그 복제물의 질이나 원본과의 차이가 어떤 중요한 의미가 있을지 의문입니다.  오히려 적법한 사적복제행위라면 되도록이면 원본과 질적인 면에서 차이가 없도록 기술개발을 장려해야 하지 않을까요?  (v) 부분 역시 비판의 여지가 다분해 보입니다.  방송사의 매출이 감소할 가능성이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매출감소가 곧바로 ‘상대방의 저작권 침해’를 뒷받침하는 것은 아닙니다.  적법한 행위에 의해서도 방송사측의 매출이 감소할 수 있고, 이는 방송사측이 감수하여야 할 부분이지 방송사측의 매출감소를 이유로 적법한 행위를 위법한 행위로 만들 수는 없는 이치입니다.  최근들어 기술의 발달로 다양한 매체간의 경쟁이 심화되고 있고 그 과정에서 어느 쪽의 매출감소는 오히려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 있습니다.  방송사측의 VOD, 비디오, DVD 매출 감소는 현재 합법적으로, 그것도 고액으로 판매되고 있는 DVR의 경우에도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DVR의 경우에도 저작권침해로 봐야 할까요?

판결문을 읽어보면, 어쩌면 해당 재판부는 엔탈서비스와 같은 네트워킹을 이용한 방송프로그램 녹화서비스가 확대되면 사적복제 행위자 수가 대폭 증가하고, 이로 인해 방송사측의 매출에 부정적인 영향이 있지는 않을지 염려하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되었습니다.  그런 우려가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사실 현행 저작권법상의 사적복제에 관한 조항이 작금의 디지털시대를 염두에 두고 마련된 것은 아니어서, RS-DVR 등 저렴한 비용으로 이용할 수 있는 새로운 복사기기 내지 시스템이 등장하면 할수록 저작물의 복제가 대량화될 수 있고, 이는 저작권자 입장에서 보면 용인하기 어려운 수준이 될 우려도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를테면 10명이 사적복제를 하던 것이 기술의 발전으로 100명이 사적복제행위에 나서게 되었다고 하여 그 행위 자체가 갑자기 위법한 행위로 뒤바뀔 수는 없는 이치 아니겠습니까.  원래 적법한 행위가 그 행위 수의 증가로 인해 당연히 위법한 행위로 변할 수는 없다는 얘기입니다.  사적복제행위가 일어나는 영역은 방송사(저작권자)가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없는 영역이고, 사적복제 영역 내에서의 행위로 인해 방송사의 매출손실이 발생하더라도 이는 방송사가 감수해야 할 부분입니다.  당초 저작권법이 예상못했던 새로운 기술로 인해 저작권자의 손실이 지나치게 커질 위험이 있다면, 이는 사적보상금제도의 도입이나 사적복제 조항의 개정 등 “저작권법의 개정”을 통해서 해결하여야 할 문제가 아닐까 합니다.

현재 이 사건은 엔탈서비스측에서 상고하여 대법원에 계류 중입니다.  한가지 분명히 하고 싶은 부분은, 위에 밝힌 내용들은 판결문에 적힌 내용만을 놓고 얘기한 것이지, ‘엔탈서비스는 저작권 침해가 아니다’라는 식의 논지까지는 아니라는 점입니다.  RS-DVR은 각각의 기술 및 서비스 구조에 따라 각기 다른 판단이 나올 수 있습니다.  엔탈서비스의 경우에도 그 서비스 방식이나 기술적 구현 정도에 따라 저작권 위반에 해당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대법원이 이에 대해 어떤 판단을 내릴지 주목됩니다.

3. 일본의 경우

일본은 전자제품의 강국답게 전자제품을 이용한 RS-DVR사건이 여러 건 있었습니다.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많이, 그리고 가장 먼저 재판이 붙은 곳이 일본이 아닐까 생각되는데요, 전체적으로 보면 어느 경우에는 저작권 침해가 인정되기도 하고, 인정되지 않기도 했습니다.  아마도 각 서비스 구조의 특이성에 기인한 게 아닌가 생각되기도 하는데요, 그런데 또 어찌 보면 꼭 그런 것 같지도 않고, 솔직히 전체적으로 어떤 통일된 기준을 찾기는 어렵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다만, 최근의 재판례를 놓고 보면 일응 ‘통일된 기준’으로서 ‘가라오케 법리’라는 것을 들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요, 하지만 최근 일본의 지적재산고등재판소는 RS-DVR과 관련하여 가라오케 법리가 적용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혀 주목됩니다).

일본의 대표적 재판례로서 최근의 것을 들자면 아마도 ‘마네키TV’사건과 ‘로쿠라쿠”사건을 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우선 마네키TV사건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마네키TV서비스를 이해하려면 우선 소니의 ‘로케이션 프리’제품에 대해 알 필요가 있는데요, 로케이션 프리는 TV방송을 인터넷을 통해 시청할 수 있게 해주는 변환장치입니다.  집안의 TV안테나선과 로케이션 프리를 연결만 하면 어디서든지 인터넷을 통해 TV를 볼 수 있는 것이지요(다만 녹화는 불가능합니다.  이 점에서 슬링박스와 비슷합니다).  그런데 해외에 거주하는 일본인 등 일본 내에 거소가 없는 사람들의 경우에는 로케이션 프리를 설치할 곳이 없지요.  마네키TV는 그와 같은 사람들을 위하여 일본 내에서 로케이션 프리를 설치, 관리해주고 매월 월정액을 받는 서비스입니다.

이를 두고 일본의 방송사들은 마네키TV가 저작권을 침해하는 것이라며 법원에 소송을 걸었습니다.  하지만 일본 법원은 ‘마니케TV를 통한 전송행위의 주체는 이용자 개개인이다”라고 판시하며 방송사측의 청구를 기각하였습니다.  방송사측은 항소하였으나 작년 12월 항소도 기각되었습니다.  그리고 올해 1월 일본 최고재판소는 방소사측의 상고를 불허함으로써 위 사건은 일단락되었습니다.

마네키TV사건에서 서비스업자가 하는 일은 “이용자들이 소유하는” 복제기기(로케이션 프리)를, 그것도 “서비스제공자가 아닌 제3자가 개발, 제조한 복제기기”를, “보관, 관리”하는 수준에 그치는 것이어서 저작권 침해가 문제될 소지는 상대적으로 적어 보입니다.

이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간(?) 서비스로는 ‘로쿠라쿠’서비스라는 게 있는데, 이는 서비스제공자 자신이 개발한 별도의 인터넷 통신, 복제기기(두 개의 교신장치로 구성됨)를 서비스제공자의 회사와 이용자의 집에 각각 설치한 후 인터넷을 통한 이용자의 조작(상호 교신)을 통해 TV프로그램을 녹화, 재생하는 서비스입니다.  이에 대해 1심 법원은 “서비스제공자가 복제기기를 설치, 관리하고 그에 따른 경제적 이익을 취하고 있으므로, 서비스제공자가 복제행위자에 해당되고, 동 서비스는 저작권 침해행위에 해당된다”고 판시하였습니다.

위에서 말하는 “복제기기의 관리, 지배, 경제적 이익”이 바로 앞서 말한 소외 ‘가라오케 법리’의 핵심적 징표입니다.  일본에는 복제행위의 주체를 규범적으로 파악하여, 물리적으로 침해행위를 하지 않은 자라 하더라도 지배 관리성과 경제적 이익(영업상의 이익)을 고려하여 직접 침해(복제)행위를 한 것으로 평가하는 가라오케 법리라는 게 있다고 합니다.  이는 원래 노래방 등에서 이루어지는 음악저작물의 공연 등에 대한 해당 업소의 경영주의 책임을 인정하기 위해 도입된 법리라고 하는데요, 이후에는 RS-DVR 서비스와 관련하여서도 서비스제공자의 책임을 인정하는 근거로 여러 번 원용되었다고 합니다.  로쿠라쿠 사건의 1심법원 또한 그러했지요(우리나라 법원이 “점유와 통제”를 근거로 서비스제공자의 책임을 인정한 것도 어느 정도 가라오케 법리의 영향을 받은 게 아닌가 추측됩니다).

그런데 지난 1월 일본의 지적재산고등재판소는 원심을 파기하고 서비스제공자의 저작권 침해를 부인하였습니다.  동 재판소는 “로쿠라쿠 서비스를 통한 복제행위의 주체는 서비스 이용자 개개인이다.  그와 같은 이용자 개개인의 복제행위는 사적복제행위로서 적법하고, 서비스제공자가 복제행위를 하였다는 전제 하에 이 사건 소를 제기한 원고의 청구는 이유가 없으므로 기각한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린 것입니다.

고등재판소의 주요 판단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i) 방송사측은 이 사건 서비스의 목적이 오로지 방송프로그램을 복제, 재생하는 데 있음을 지적하고 있으나, 그와 같은 목적은 복제행위 주체가 누구인지를 결정하는 데 충분한 요소가 아니다(오히려 이용자가 녹화기기를 자신의 집에 설치하여 녹화하는 경우에도 그와 같은 목적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ii) 방송사측은 녹화기기와 관련 시스템 전체를 서비스제공자가 설치, 관리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나, 이 역시 서비스제공자가 복제행위자라고 판단할 근거는 될 수 없다.  그와 같은 기술적 전제조건의 구비의 문제는 수신, 녹화, 송신을 실현하는 행위 그 자체와는 다른 차원의 문제이며 기술적 전제를 제공하였다고 하여 그 즉시 그 사람이 수신, 녹화를 실시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  서비스제공자가 녹화기기를 개발한 이상 그가 녹화기기를 설치, 관리하는 것이 기술상, 경제상 가장 효율적인 방법임에는 이론이 없고, 그와 같이 서비스제공자가 녹화기기등을 설치, 관리하는 것은 본건 서비스가 원활히 제공되기를 바라는 계약 당사 쌍방의 합리적 의사에 의한 것이다.  또한 본건 서비스에 있어 TV프로의 녹화와 송신은 오로지 이용자의 조작행위에 의해 실행되는 것이고, 서비스제공자가 녹화기기등을 관리하는 것 자체는 해당 녹화 과정 그 자체에 대하여는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 못한다.

(iii) 방송사측은 이용자로부터 본건 서비스의 대가를 수령하고 있는 점을 지적하고 있으나, 본건 서비스는 녹화기기 자체의 임대 및 보수, 관리 등을 수반하는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이에 걸맞는 상당 액수의 대가의 지급이 필요하다.  서비스제공자가 받는 대가가 해당 기기의 임대료등의 대가의 수령을 넘어 본건 복제 내지 그것에 의해 작성된 복제물의 취득의 대가 또한 포함한다고 볼 증거가 없다.

(iv) 결국 본건 서비스를 통한 녹화행위는 이용자 자신이 녹화기기를 이용하여 녹화하는 것과 다르지 않고(이와 같은 복제가 사적복제로서 적법한 것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서비스제공자가 제공하는 본건 서비스는 이용자의 자유로운 의사에 근거해 행해지는 적법한 행위의 실시를 용이하게 하는 환경, 조건 등을 제공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할 것이다.

(v) 디지털 기술의 비약적 진전과 인터넷 환경의 급속한 정비는 종래의 기술적 제약을 극복하여 방송 프로그램 시청을 시간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현저하게 용이하게 하였다.  그리고, 기술의 비약적 진전에 수반해, 새로운 상품개발이나 서비스가 창생되어 보다 편리성이 높은 제품이 이용자 사이에 보급되어 가전제품으로서의 지위를 확립해 나가는 과정을 밟아 나가고 있고, 이는 기술 혁신의 역사를 되돌아 보면 자연스러운 것이다.  본건 서비스도 이용자의 적법한 사적 이용을 위한 보다 나은 환경조건 등의 제공을 도모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와 같은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이 증대·누적했다고 본래 적법한 행위가 위법으로 바뀔 여지는 없고, 이에 의해 방송사등의 정당한 이익이 침해되는 것도 아니다.

(vi) 아울러 클럽 캐츠아이 사건 최고재판소 판결[가라오케 법리를 지칭하는 것임]은 본건과 사안을 달리하는 것이 분명하다[따라서 이 사건에 적용될 수 없다는 취지].

4. 맺음말

RS-DVR 관련 사건들은 네트워크를 이용한 서비스(network-based recording and playback system) 시대의 도래와 맞물려 매우 중요한 사안입니다.  RS-DVR과 유사한 서비스들, 이를테면 music lockering 서비스(이용자가 인터넷상의 서버에 음악파일을 저장해놓고 인터넷을 이용해 각종 기기를 통해 공유, 스트리밍 하는 것), 클라우드 컴퓨팅(프로그램과 파일들이 별도의 서버에 저장하고 이용자는 이에 접근하여 이용하는 것) 등도 등장하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물건을 사는 시대는 가고 서비스를 사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리고 말 할 것도 없이 그 기저에는 인터넷과 IT 기술의 발전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와 같은 기술의 발전은 종래 이를 예상치 못했던 저작권법과 갈등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RS-DVR과 관련된 각국의 재판 사례들은 이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어떤 결론이 타당한지는 판단하기 쉽지 않은 부분입니다.  다만 재판과정에서 지나친 가치판단이나 입법론적 고려를 내세우는 것은 또 다른 분쟁거리를 만들어낼 우려가 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입법론적인 해결이 가장 바람직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십니까?

[후기: 우리 대법원은 2009. 9. 24.자로 엔탈측이 제기한 상고에 대해 심리불속행 결정을 내림으로써, 위 사건은 결국 방송사측의 승리로 일단락되었습니다.  관련 포스트는 여기를 클릭(2009. 10. 7.)]

[후기2: 일본최고재판소는 지난 1월 위에 언급된 마네키TV판결과 로쿠라투판결의 원심을 모두 파기하였습니다.  이로써 이에 관한 일본 법원의 판단은 “저작권 위반”이라는 것으로 정리(변경)되었습니다.  이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이에 관한 자세한 포스트는 추후 업데이트하여 공지하겠습니다(2011. 2. 8)]

© 2009 정원일 변호사.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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