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흥미로운 사건이 있었습니다. 케이블TV 셋톱박스에 “CF박스”라는 광고영상송출기기를 연결하여 TV화면 하단에 지역광고를 송출한 것을 두고 케이블TV사업자들이 “방송사의 허락 없이 화면을 가공하고, 방송사를 거치지 않은채 광고를 송출하는 것은 방송법에 규정되지 않은 불법방송”이라며 소송을 제기한 것인데요, 언론보도에 따르면 서울서부지방법원은 지난 6월 “케이블방송사들의 셋톱박스에 광고영상송출기기를 임의로 연결해 방송신호를 가공, 변조하는 행위의 금지를 명”했다고 합니다. 결국 불법이라는 얘기입니다. 이에 앞서 케이블방송사들은 “방송통신위원회로부터 셋톱박스에 연결해 광고를 삽입하는 행위가 방송법에서 규정하지 않은 불법방송이라는 유권해석을 받은 바 있다”는 기사 언급도 있습니다(관련 기사는 여기, 여기).
판결문을 보지 않아 정확한 언급은 어렵겠습니다만, 이 사건은 몇 가지 생각을 떠올리게 합니다. 우선, CF박스를 이용한 광고삽입행위가 불법’방송’에 해당되는지입니다. 이는 CF박스의 광고가 광고회사가 케이블을 통해 송출하는 방송신호에 의하는 것이 아니라, 사전에 제작된 광고 영상 파일을 USB메모리 스틱에 담은 후 동 메모리 스틱을 CF박스 후면의 USB에 연결하여 재생하는 데 그치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이에 대하여는 해당 업체의 홈페이지 설명과 제품설명서 참조). “공중에게 전기통신설비에 의하여 송신”한다는 전통적인 방송의 정의와는 차이가 있는 부분입니다.
다음으로, CF박스의 화면분할광고가 ‘방송신호를 무단 변조’한 것인지가 하나의 쟁점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는 케이블 셋톱박스와 TV사이에 CF박스를 연결하고, 즉 케이블 신호가 CF박스를 통과하는 과정에서 방송화면이 분할되는 결과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다만, CF박스 측에서는 원래 방송화면을 ‘가리는 것’이 아니라 원 방송의 출력부분을 화면 상단으로 올리고 새로 생긴 하단에 광고를 출력한 것이므로 신호 조작은 아니라는 주장을 했을 것으로 보이는데(예전에 기사검색을 통해 접한 내용인데, 기사 원문은 찾지 못하겠음), 받아들여지지는 않았습니다.
사실, CF박스는 TV의 소유주가 원해서 설치한 것이고, (케이블회사의 소유라는) 셋톱박스와 CF박스가 연결된 것은 TV화면에 케이블 방송영상과 CF박스 광고 영상이 동시에 나타나게 하기 위한 부득이한 조치로 이해 못할 바 아닙니다. 물론 CF박스 사건은 판결문을 보지 못해 정확한 사실관계나 쟁점, 판단근거 등을 알 수 없어(어찌보면 판단내용조차 정확히 알 수 없어) 이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무리입니다만,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아무리 방송사라 해도 방송신호를 독점할 수는 있어도 ‘TV화면’까지 독점할 수 있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방송신호는 방송신호일 뿐 TV화면에 어떤 크기로 어느 위치에 나타나게 될지를 방송사가 미리 정하고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 이를테면 TV화면을 분할할 것인지(이를테면 두채널 동시 보기), 분할된 화면에 어떤 영상을 재생시킬 것인지, 기타 화면의 레이아웃을 어떻게 할지는 TV의 소유자인 소비자가 알아서 판단할 문제가 아닐까 합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방송신호가 가공, 변조된다면 위법행위에 해당되겠지만, 어디까지를 그와 같은 ‘방송신호의 가공, 변조’로 볼 것인지는 또 다른 문제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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