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법원, 리얼네트웍스의 DVD 복제프로그램 RealDVD에 대해 판매등금지가처분 결정 – 소비자의 사적 복제(Fair Use)를 용이하게 하는 기술의 개발이 저작권 침해인가?

그림 4자신이 구입한 비디오테이프를 개인 소장 등의 목적으로 VCR을 통해 복제하는 것은 저작권 침해가 아니지요(이른바 사적 복제 혹은 Fair Use).  그리고 복제의 도구, 즉 VCR을 제조한 업체 또한 저작권법 위반이 아닙니다.  이는 1984년 미국의 그 유명한 베타맥스(Betamax) 사건을 통해 확립된 내용입니다.  그로부터 25년이 지난 지금, 비디오테이프 대신 DVD나 CD가 자리 잡은 지 오래입니다.  그렇다면 영화DVD를 개인 컴퓨터나 공DVD에 복제하는 행위는 어떨까요?  백업용이나 기타 사적인 시청을 위해서 말입니다.  이 경우에도 Betamax사건과 똑같은 결론에 다다르게 될까요?

바로 이 문제를 놓고 미국에서는 리얼네트웍스와 헐리웃 영화제작사들이 1년여 넘게 치열한 소송을 벌여 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지난 화요일, 비록 가처분사건에 관한 것이어서 최종적인 판단은 아닐 수 있겠습니다만, 미국 법원은 영화제작사측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즉, 리얼네트웍스사가 개발한 RealDVD(DVD를 컴퓨터 HDD나 별도의 공DVD에 복제, 저장할 수 있게 해주는 프로그램)는 미국 디지털밀레니엄저작권법(DMCA)과 CSS(DVD의 복사 방지를 위한 암호장치) 라이센싱 계약을 위반했으므로 그 제조, 판매 등을 금지한다는 가처분결정(Preliminary Injunction)이 내려진 것입니다.

판결문이 무려 58페이지에 이르더군요.  시간 관계상 자세히는 읽어 보지 못했습니다만, 여러가지 의미가 있는 부분들, 그리고 향후 논쟁을 불러 일으킬 만한 내용들이 꽤 눈에 띄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담당 판사는 소비자의 DVD복제를 가능케 하는 도구(device)를 제공한 자의 행위가 위법하다는 입장을 취한 것인데, 이는 일견 앞서 언급한 Betamax 판결에 배치되는 것 아니냐는 의문이 있을 법도 합니다.  왜냐하면 비디오테이프냐 DVD냐는 매체의 차이만 있을 뿐, 행위의 속성에는 차이가 없는 것 아니냐는 반론이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단순하게(?)만은 보기 어려운 면이 있습니다.  Betamax판결에 충격(?)을 받은 저작권자들의 반격때문이었을까요?  그리고 인터넷을 통한 불법 복제물의 대량 유통에 겁(?)을 먹은 입법자들의 동요때문이었을까요?  이후 미국은  DMCA를 통해, 특정 저작물에의 접근과 복제를 통제하는 암호화장치를 무력화시키는 도구의 개발과 유통을 불법으로 규정하였습니다.  그리고 영화제작사들은  CSS라는 DVD 복사방지 장치를 통하여 DVD이용자들의 무단 복제를 금하고 있습니다.

담당 판사는 이와 같은 점을 지적하며, “Betamax판결은 DMCA가 제정되기 전의 것이므로, DMCA가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내용에 있어서는 DMCA의 규정이 우선한다”면서, 베타맥스 판결의 우선적 적용을 주장한 리얼네트웍스의 주장을 배척했습니다.

문제는 DMCA의 관련 조항이 암호무력화기술의 개발행위의 가벌성을 너무나도 명확하게, 이론의 여지 없이 규정하고 있다는 점에 있습니다.  그 취지는 공감하지만, 리얼네트웍스의 주장처럼 소비자의 사적 이용(백업등)을 위한 복제행위에 암호무력화장치가 사용되는 경우에도 그와 같은 장치(이 사건의 경우에는 RealDVD)의 개발자에게 DMCA 위반의 책임을 묻는 것이 합당할까요?  리얼DVD는 사적 복제(fair use)라는 이용자들의 정당한 행위를 돕는 것에 불과한 것이므로 이 역시 적법하다고 보어야 하는 것 아닐까요?  DMCA의 조항은 저작권자에게 지나치게 유리한 내용이 아닐까요?

이 문제에 대하여 담당 판사는 “Real DVD를 통한 이용자의 DVD 복제행위가 사적 복제(Fair Use)에 해당된다 하더라도, 그와 같은 복제 도구(RealDVD)를 개발, 배포한 리얼네트웍스는 저작권법(DMCA) 위반의 책임을 질 수 밖에 없다.  그것이 바로  DMCA를 제정한 입법자의 뜻임은 문언상 이론의 여지가 없다”고 판결했습니다.

담당 판사는 관련 이용자들의 복제행위가 사적 복제에 해당되는지에 대하여는 명시적인 판단을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사적 복제에 해당되는지 여부에 상관없이 그와 같은 ‘복제’를 가능케 하는 암호무력화장치를 개발하였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리얼네트웍스의 저작권 위반 책임은 인정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디지털이라는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여 저작권자와 저적물이용자 간의 이익을 어떻게 조정하는냐에 대하여는 언제나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DMCA의 제정으로써 이에 관한 입법자의 결단은 저작권자의 이익을 보다 보호하는 방향으로 내려진 것이고, 따라서 법원이 그와 배치되는 “정책적인 고려”를 내세워 법 문언에 반하는 해석을 할 수는 없다고 판시하였습니다.

사실 이 부분에 있어서는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적법한 행위(사적 복제)에 가공한 행위가 어떻게 불법일 수 있나”라는 근본적인 물음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는 것이지요.  이에 대해 담당 판사는 “법이 그와 같은 가공 행위가 불법이라고 선언한 이상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니, 이 또한 전혀 이해 못할 바는 아니라는 생각도 드네요.

이 사건은 현재 미국에서 상당히 의미있는 사건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법원의 최종판결 내용에 따라 업계에 상당한 파급효과를 미칠 수 있는 사건으로 말이지요.

일각에서는 미국법원이 RealDVD의 판매를 금지시킴으로써 백업 등 비영리적 목적으로 DVD복제를 필요로 하는 소비자들로서는 기존의 불법 DVD 복제프로그램을 찾을 수 밖에 없고, 이는 결과적으로 헐리웃 영화제작사들에게 더 손해를 가져오고 말 것이라는 비판도 있습니다.  RealDVD는 다른 불법 DVD복제 프로그램과 달리 복제 가능 횟수를 제한하고 복제된 DVD 또한 리얼네트웍크의 프로그램을 통해서만 재생이 가능하도록 제한하고 있음을 두고 하는 얘기입니다.

비록 가처분 결정에서는 패소했지만 리얼네트웍스측에서 항소 등 판결을 뒤집기 위해 적극적으로 대응할 것으로 보이니 만큼, 미국 법원의 최종 판단이 어떻게 될지 자못 궁금해집니다.

참고로, 위 사건의 담당 판사는 캘리포니아주 북부지방법원의 Marilyn Hall Patel 판사입니다.  바로 10년여 전 넵스터 판결을 내린 판사라고 합니다.  얼마 전에는 “현행 저작권법으로는 인터넷 시대의 새로운 기술에 따른 음악컨텐츠의 유통과 저작권 이슈를 효율적으로 다룰 수 없다”면서, “음악저작물의 온라인 유통에 따른 라이센싱, 로열티, 분쟁조정 문제 등을 관할할 새로운 민관합동기구를 도입하자”고 제안한 바도 있습니다(관련 포스트는 여기를 클릭).

[후기(2010/3/13/): 위 소송은 리얼네트웍스가 저작권자들의 요구를 수용하여 리얼DVD의 제조, 판매를 포기하는 것 등을 조건으로 하여 화해 종결되었습니다.  관련 포스트는 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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