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가디언지 보도에 따르면, 미국 파라마운트사의 Slate Financing Deal에 참여했던 투자자들(펀드)이 파라마운트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고 합니다. 소송의 내용은 ‘파라마운트사가 영화상영 수입을 축소은폐하고 제작비용은 부풀리는 식으로 투자자들에게는 한 푼의 이익금도 지급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관련 기사는 여기를 클릭).
슬레이트 파이낸싱의 시작과 쇠퇴
슬레이트 파이낸싱이란 영화 파이낸싱 기법 중의 하나로, 스튜디오가 제작예정에 있는 ‘수 편(보통은 10편에서 20편 정도)’의 영화에 대한 제작비를 일괄 지원하는 방식입니다(이에 관한 예전 포스트는 여기). 특이한 점은 슬레이트 파이낸싱은 equity financing(지분투자) 방식으로, 보통 전체 영화 제작비의 50%를 투자하고 지분(이익) 50%을 배정받게 됩니다. 영화사와 투자자가 일정 프로젝트(영화) 범위 내에서 일시적인 동업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만큼 투자자 입장에서는 위험도가 높은 반면(지분투자 방식이므로, 영화 흥행이 실패하면 원금도 잃을 수 있음), 영화가 성공만 하면 대출방식보다 훨씬 높은 이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게다가 여러 편의 영화 관련 수입 전부가 투자상환 재원으로 사용되므로 한 편의 영화에 투자하는 것보다 안전한 투자 방식으로 이해되어 왔습니다. 슬레이트 파이낸싱은 2000년대 초반 월스트리트의 사모펀드들이 넘쳐나는 유동자금을 적절히 활용할 곳을 찾으면서 활발히 이용되었습니다. 특히 Hollywood로 대변되는 영화산업이 뿜는 화려함은 자신들의 투자포트폴리오를 보다 빛나게 하고픈 펀드관리자에게는 안성마춤이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2008년경 미국 금융위기가 시작되면서 슬레이트 파이낸싱 거래는 사실상 사멸하는 단계에 접어들게 됩니다 (물론 불과 몇 달 전 유럽에서 최초의 “유럽판 슬레이트 파이낸싱’이 성사되기는 했지만, 적어도 미국 시장만 놓고 본다면 그렇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자금부족과 구조조정에 직면하게 된 금융기관들과 사모펀드들은 더 이상 고위험성과 막대한 자금이 소요되는 슬레이트 파이낸싱을 일으킬 여력이 없어지게 되었습니다. 이런 분위기는 기존에 기표된 슬레이트 파이낸싱에도 영향을 미쳐, 투자자들과 영화사 측의 이런 저런 불협화음(소송)도 생기기 시작했습니다(관련 소송 소식은 여기).
금번 파라마운트사의 소식도 그와 같은 연장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 동안 투자자들이 슬레이트 파이낸싱(영화제작사)에 대해 내놓은 불만들은 기본적으로 “들어가는 돈은 많은데 그 돈이 어디에 어떻게 쓰이고 얼마나 수익을 내고 있는지 알 수 없다”는 데 있었습니다. 금번 투자자들의 소송도 비슷한 내용인 것으로 보입니다(참고로 금번 소송의 투자 대상에는 전세계적으로 대히트한 ‘Transformers’와 ‘Mission Impossible III’도 포함되어 있다고 합니다).
Hollywood Accounting.. ‘엉터리’인가 ‘이해 부족’인가?
그런데 월스트리트의 일류 로펌을 대리인으로 쓰면서 자신들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하여 수백 페이지에 이르는 Slate Financing Agreement를 작성한 투자자들(그들 자신도 전문적인 투자/헷징 기법으로 무장한 월스트리트의 승부사들입니다)이 그와 같은 불만을 하다니, 조금 의아하게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이는 그만큼 영화산업, 영화투자라는 분야가 얼마나 특수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것인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일례로서, 헐리웃에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이른바 ‘Hollywood Accounting’이라 하여 수입/지출/이익 등에 관한 영화제작사의 회계처리 기법을 ‘엉터리’라며 비난하기도 하지만,이는 그것이 ‘엉터리’라기 보다는 그것에 대한 ‘이해부족’에서 기인하는 바가 큽니다. ‘수입gross’과 ‘이익profit’이라는 개념은 상대적인 것이고 문제되는 계약 당사자들이 계약서에서 그 의미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질 수 밖에 없습니다. 더욱이 영화산업은 영화라는 상품을 제작하고 판매, 유통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이해관계자들이 등장하고 각각의 거래관계는 100여년에 걸쳐 형성되어 온 실무관행에 지배되는 바가 크기 때문에, 각각의 이해관계자들과 맺는 계약서마다 수입과 이익의 정의가 달라질 수 있으며, 이는 각 계약단계 별 이해당사자 간의 협상력 차이에서도 오는 자연스러운 결과입니다. 이와 같은 영화산업의 생리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투자자는 계약협상과정에서 자칫 중요한 협상포인트를 놓치거나 영화업계에서만 사용되는 용어의 의미에 대한 정확한 정의를 내려놓지 않고 진행하게 되는 결과 나중에 가서는 불의의(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는 이미 예정되어 있는) 손해를 입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는 것입니다.
Box Financing은 Film Financing을 구원할 수 있는가?
일각에서는 이러한 투자자들의 불만을 감안하여 ‘ Box Financing’이라는 새로운 개념이 주장되고 있습니다. 이는 투자배당금을 계산함에 있어 기준이 되는 수입(gross)의 개념을 단순히 ‘박스 오피스 수입’으로 하자는 주장입니다. 즉, 종전처럼 투자파트너인 영화제작사측이 박스 오피스 수입에서 여러가지의 복잡한 공제(이를테면, distribution fees나 계열회사 등에 대한 제작 관련 지급금 등)를 거치고 난 뒤의 금액을 ‘수입’으로 정의하는 관행을 바꾸자는 것입니다(일례로서 일전에 영화 ‘Happy Potter and the Order of the Phoenix’가 전세계적으로 6억불이라는 어마어마한 수입을 얻고서도 정작 투자자들에게는 ‘투자자에게 배당되어야 할 수입이 없고 오히려 손실을 보았다’고 통보한 것이 문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상식적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지만, 박스오피스 상의 수입을 ‘수입’으로 볼지, (예를 들어) 박스오피스 상의 수입에서 각종 공제와 배급사의 수익 등을 공제한 나머지를 ‘수익’으로 볼 것인지는 어디까지나 계약당사자가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와 같이 단순히 ‘수입’의 산정방식 내지 정의를 투자자들에게 유리하게 바꾸는 것만으로 Slate Financing이 되살아날 수 있을까요? 장기적으로는 모르겠습니다만, 현재의 상태에서는 그렇게 보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무엇보다도 (앞서 언급되었지만) Slate Financing의 문제점은 ‘수입과 이익을 어떻게 계산하느냐’가 아니라 ‘충분한 박스 오피스 수입이 발생할지 어떻게 아느냐’는 것입니다. 즉 영화라는 것은 상영을 하기 전까지는 그 흥행여부를 알 수 없는 고위험산업이라는 얘기입니다. 그리고 그와 같은 ‘고위험성'(어찌보면 투기와도 같은)은 금융기관의 생리와는 조화되기 어려운 부분입니다. 더더욱이 slate financing은 영화투자 기법 중 가장 위험한 지분투자 방식입니다. 투자금 상환에 충분한 박스 오피스 수입이 발생할 것인지조차 불확실하다면, ‘박스오피스 수입의 일정 부분을 이익으로 주겠다’는 Box Financing은 투자자들의 불만을 일거에 해소하기에는 여전히 부족할 것입니다. 영화 제작사 입장에서도 과연 그와 같은 양보(?)를 해가면서까지 slate financing을 해야할지 회의적일 수 있습니다. 물론 일부 헐리웃 톱스타 배우의 경우에는 말그대로 gross(총수입)에서 곧바로 특정%의 보너스(contingency fees)를 지급하기로 계약하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이는 어디까지나 대체가능성이 낮은 초수퍼스타의 경우에나 그런 것이고, 이와 달리 대체 파이낸싱 채널이 열려 있는 film financing 시장에서는 아직은 시기상조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 2011 정원일 변호사. All rights reserved.
One Reply to “Paramount사, Slate Financing 투자자들로부터 소송 제기 당해 – Slate Financing Deal의 시작과 그 문제점, 작금의 상황과 그 개선 가능성에 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