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10일 서울중앙지방법원 제11민사부는 박진영씨가 작곡한 ‘섬데이’가 작곡가 김신일씨의 곡 ‘내 남자에게’를 일부 표절했다고 판결했습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법원은 “섬데이의 후렴구 네 마디와 김씨 노래의 대비 부분이 현저히 유사한 점을 고려하면 박씨가 사실상 김씨의 곡에 의거해 노래를 만든 것으로 추정”되고, “박씨는 노래를 만들 때 타인 작품에 대한 침해 여부를 확인해야 할 주의의무를 다하지 못하고 김씨의 2차적 저작물 작성권 및 성명표시권을 침해했다”고 보았습니다. 이에 따라 법원이 박진영씨에게 지급을 명한 위자료액은 2,167만원이라고 합니다(관련 기사는 여기).
음악 표절 문제는 논란은 많지만 막상 법의 잣대로 ‘분명히 이것은 표절이다’라고 판단하기는 상당히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음악은 다른 표현양식과 달리 표현방법이 상당히 제한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7개의 기본음을 사용하고, 리듬이나 화성이라는 것도 이미 청중의 귀에 익숙해져 있는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많은 표절 논란들이 말 그대로 논란 수준에서 그치고, 표절 소송을 제기하더라도 재판에서 이기기는 쉽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와 같은 점을 고려할 때 법원이 음악(가요곡)의 표절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는 점은 상당히 주목할 만합니다(참고로 지난 2006년경에도 MC몽의 ‘너에게 쓰는 편지’에 대한 표절 판결이 있었습니다).
음악 표절의 성립 요건 및 소송에서의 방어 방법
법적으로 음악 표절이 성립하기 위하여는, 표절이 문제되는 곡의 작곡자가 원곡에 근거하여(이른바 ‘의거관계’ 또는 ‘접근가능성’) 그와 실질적으로 유사한 노래(이른바 ‘실질적 유사성’)를 만든 경우여야 합니다. 아울러 원곡은 고유한 창작성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따라서 표절 소송에서 피고측은 다음과 같은 반박을 하게 됩니다:
(i) 원고의 곡(또는 문제되는 부분)은 예전의 다른 곡들에서 널리 사용되어 온 관용구에 불과하다(창작성의 부인)
(ii) (창작성이 있더라도) 피고는 원고의 곡을 들어본 적이 없다(의거관계 내지 접근가능성의 부인)
(iii) (창작성도 있고 접근가능성도 인정되더라도) 원고의 곡과 피고의 곡은 실질적으로 다르다(실질적 유사성의 부인).
아직 판결문은 읽지 못하였습니다만, 아마도 이 사건에서도 박진영씨는 비슷한 주장을 하였을 것으로 보입니다. 예를 들어 박진영씨가 판결 직후 ‘김신일 작곡가의 곡은 들어본 적도 없는데 억울하다’라는 심경을 밝힌 부분은 위 두 번째 주장에 해당됩니다. 하지만 ‘접근가능성’이라는 것은 말 그대로 ‘가능성’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실제 소송에서 ‘의거관계/접근가능성’의 문제는 여러 정황증거를 통해 과연 피고가 원고의 저작물을 베낄 기회를 가졌다고 볼 것인지를 판단하는 것이 됩니다. 특히 두 작품 사이의 유사성이 현저한 경우에는 ‘의거관계/접근가능성’을 사실상 추정하기도 합니다. 과거 ‘MC몽 사건’에서 법원은 원고의 곡이 MC몽의 곡보다 먼저 발표되었고 TV, 라디오를 통해 널리 방송되었다는 점을 들어 “MC몽의 곡은 상대방의 곡에 의거한 것으로 추정된다”도 판단한 바 있습니다.
한편, 첫 번째/세 번째 주장(원곡의 창작성 내지 실질적 유사성의 문제)과 관련하여 주목할 만한 사건은 과거 태진아씨의 “사랑은 아무나 하나” 사건일 것입니다. 태진아씨의 곡이 “여자야”라는 곡을 표절했는지가 문제된 사건에서, 법원은 “두 곡 사이에 유사한 점은 있으나, 두 곡 모두 원저작권자가 밝혀지지 않은 구전가요에 바탕을 둔 것이고, ‘사랑은 아무나 하나’는 구전가요의 기본 리듬 가락 화성 외에는 ‘여자야’와 실질적인 유사성이 거의 없어 저작권 침해는 성립하지 않는다”라고 판결한 바 있습니다. 이와 같이 표절 소송에서 피고측에서는 원고측 곡의 창작성을 부인하기 위해, 그보다 앞서 비슷한 분위기의 곡은 없었는지 광범위한 모니터링 작업을 하게 되고 그에 따른 결과물을 법원에 증거로 제출하게 됩니다.
과연 소송이 정답인가?
마지막으로 표절 소송과 화해(조정)의 문제를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표절을 주장하는 측 입장에서는 과연 소송을 제기하는 것이 최선인지, 그리고 일단 소송이 제기되더라도 화해(조정)로 소송을 마무리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은지 신중히 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소송을 화해로 마무리했다거나 (특히) 피고측이 원고에게 일정 금액을 지급하고 화해하기로 했다고 하면 이를 두고 피고측이 잘못을 인정한 것이라는 잘못된 해석을 하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봅니다. 특히 창작자로서의 자존심을 중요시하는 작곡자라는 직업의 성격도 상호 양보를 전제로 하는 원만한 타협을 어렵게 하는 걸림돌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화해(조정)는 서로의 이익을 위한 것입니다. 2,3년 간 계속되는 표절 소송이 주는 스트레스를 부여안고 속앓이를 하는 것은 결코 창작활동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소송이라는 것은 결국 승자와 패자를 낼 수 밖에 없는 것인데 그와 같은 극단적인 결과가 작가로서의 명성과 자존심에 줄 타격을 생각해 본다면, 솔직히 소송이라는 것은, 그리고 법원의 판결을 받겠다는 생각은 상당히 risky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후기 (2013/02/03)] 서울고등법원은 박진영씨의 항소를 기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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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만의 포스팅이군요. 민감하고 판결내기 어려운 분야인데, 저런 결과가 나왔군요. 흥미롭네요.
언제나처럼 잘보고 갑니다^^
늦었지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감사합니다. 이상윤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