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포먼스 마케팅
지난 4월 호주 시드니의 애플스토어 앞에서는 ‘깨어나라(wake up)’라는 문구가 쓰인 대형 버스에서 검은 옷을 입고 내린 사람들이 매장 앞에서 같은 글귀가 적힌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인 것이 언론의 관심을 끈 바 있다. 이 사건은 애플과 경쟁관계에 있는 모 통신기기 제조회사가 자신의 사업에 대한 사람들의 끌기 위한 퍼포먼스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듯 종래와 같은 종이나 방송매체 대신 소비자들이 모인 장소에서의 계획된 행동, 행사 내지 전시를 통해 자신의 상품과 서비스를 광고하는 이른바 ‘퍼포먼스 마케팅’이 광고업계에서 널리 쓰이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퍼포먼스 마케팅은 그 목적과 구현방식이 다양한 만큼, 법률적인 검토 또한 각각의 구현양식에 따라 달라질 수 밖에 없다. 주로 법적인 문제가 제기되는 것은 경쟁사의 영업장소 인근에서 경쟁사 제품에 대한 부정적 메세지를 전달하거나 자사 제품과 비교하는 경우, 또는 정식 후원업체가 아닌 업체가 올림픽과 같은 특정 이벤트의 유명도를 이용하기 위해 행하는 이른바 매복 마케팅(ambush marketing)의 경우이다.
우선 위 애플스토어 사례와 같이 경쟁사의 영업장소 인근에서 경쟁사 제품에 대한 부정적 메세지를 전하거나 자사 제품과 비교하는 퍼포먼스 광고 시 법적으로 유의하여야 할 사항을 살펴 본다. 이와 같은 광고는 자칫하면 경쟁사 제품에 대한 허위비방광고나 불공정한 비교광고에 해당된다는 비판이 있을 수 있으므로 이에 주의하여야 함은 당연하다. 특히 퍼포먼스 마케팅의 속성상 그 광고효과가 즉각적이고 소비자들의 인식에 깊이 각인된다는 점에서 소비자의 혼동 방지라는 관점에서 더욱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서는 기존의 전통 매체를 통한 광고에서와 같이 표시광고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에 따른 부당한 표시광고 행위의 금지 조항의 적용이 될 여지가 있을 것이나, 한편으로 동법은 모든 광고에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특정 매체 또는 수단에 의한 광고의 경우에만 적용되는 것이어서 모든 비언어적인 광고행위에까지 동법이 적용된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다만 동법이 적용되지 않는 경우에도 일반 민사상 불법행위 법리에 따른 책임이 성립될 여지는 있을 것이다. 아울러 퍼포먼스 마케팅이 도로상에서 이루어지거나 기타 공공장소에서 이루어지는 경우에는 도로교통법 기타 관련 행정법규를 준수하여야 함은 당연하며, 그것이 ‘집회’ 내지 ‘시외’의 형식을 취하게 되는 경우에는 관련 법령(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의 적용여부를 사전에 검토하여야 할 것이다.
매복 마케팅
다음으로 이른바 ‘매복 마케팅(ambush marketing)’의 경우를 살펴보자. 매복 마케팅을 명확히 정의하기는 어려운 면이 있는데, ‘해당 이벤트의 스폰서가 아닌 업체가 광고문구 등을 통해 정식 스폰싱 업체인 것처럼 보이게 하거나, 또는 해당 이벤트와 연관되거나 이를 연상키시는 특정 행위를 통해 이벤트를 둘러싼 대중의 관심을 광고에 이용하는 마케팅 기법’ 정도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매복 마케팅은 퍼포먼스에 의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올림픽 기간 중 광고문구에 ‘올림픽’을 연상시키는 문구나 상황을 연출하는 것은 퍼포먼스에 의하지 않는 매복 마케팅이다. 반면, 예를 들어 올림픽 기간 중 자기 상표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은 다수의 사람들 경기장 관람석에 자리잡게 하고 다른 관중들과 TV 카메라의 관심을 끄는 것은 퍼포먼스 마케팅의 일종에 해당된다.
이와 같은 매복 마케팅의 근저에는 이른바 스폰싱을 둘러싼 이해관계가 깔려 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스폰싱’이란 올림픽이나 월드컵 같은 이벤트와 관련하여 특정 업체가 해당 이벤트를 후원하고 반대급부로서 공식적으로 그 표장 등을 광고에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받는 것을 의미한다. 정식 스폰서가 아닌 업체는 매복 마케팅을 통해 거액의 스폰싱 금액을 지급하지 않고서도 스포츠 이벤트의 유명세를 광고에 이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경제적인 잇점이 있을지 모르나, 반대로 이벤트 주최자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비용과 노력으로 진행되는 이벤트에 무임승차하는 것이라는 불만을, 그리고 정식 스폰싱 업체 입장에서는 거액의 스폰싱을 하고서도 광고효과는 미미하다는 불평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연유로 근래들어 올림픽이나 월드컵 대회 주최자들은 그와 같은 매복 마케팅에 대하여 매우 강력한 법적 대응 조치를 취하고 있어 주목된다.
그와 같은 사례의 하나로서 코카콜라와 경쟁관계에 있는 펩시콜라의 NHL(북미하키리그) 광고 사례를 들 수 있다. NHL은 코카콜라와 공식 음료 스폰싱 계약을 체결하였고, 그에 따라 NHL과 그 소속팀들의 명칭이나 로고를 음료광고에 이용할 권리는 코카콜라에만 있었다. 그러자 펩시콜라는 NHL 우승팀의 로고가 새겨진 병뚜껑을 가져오는 고객에게 상금을 지급하는 콘테스트를 진행하였다. NHL은 이를 두고 펩시콜라가 자신의 상표권을 침해하고 부정경쟁행위를 한 것이라며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였던 것이다(상표권 침해와 부정경쟁행위는 매복 마케팅에서 문제되는 가장 중요한 법률 이슈인데, 이에 대하여는 뒤에서 다시 살펴 본다). 이에 대해여 캐나다 법원은 펩시콜라측의 광고가 공격적(aggressive)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위법(unlawful)은 아니라고 판단하였다.
비슷한 사례는 인도에서도 있었다. 인도에서 인기 높은 스포츠인 크리켓과 관련하여서인데, 필립스사(Philips)가 “Buy a Philips Audio System, Win a Ticket to the Cricket World Cup 2003”이라는 포로모션을 실시한 것이 문제가 되었다. 필립스사는 크리켓월드컵 주최자와 계약한 공식 스폰싱 업체가 아니었던 것이다. 이를 두고 크리켓월드컵 주최자는 인도 법원에 광고 금지를 구하는 가처분을 신청하였다. 이에 대해 인도 법원은 크리켓월드컵 주최차들의 신청을 기각하였는데, 그 이유는 그와 같은 광고문구는 소비자로 하여금 해당 경품에 당첨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알려주는 것에 불과하고 이를 넘어 소비자에게 필립스사가 해당 월드컵의 공식 스폰싱 업체라고까지 할 혼동을 제공할 가능성은 없다는 것이었다. 나아가 인도 법원은 광고주와 광고업체는 표현의 자유를 향유하는 이상 위와 같은 수준의 광고는 공공의 이익에도 반하지 않는다고 판결하였다.
우리나라의 경우
우리나라의 경우 아직까지 퍼포먼스 마케팅이나 매복 마케팅의 위법성 여부가 법정에서 다투어진 사례는 없지만, 우리나라 법상으로도 외국의 경우와 유사하게 상표법이나 저작권법 또는 부정경쟁방지 및 엽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이하 “부정경쟁방지법”)의 위반 여부가 문제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우선 상표법의 경우를 보자. 예를 들어 현행법상 퍼포먼스 마케팅을 하면서 타인이 보유하는 상표를 이용하고 이를 통해 소비자로 하여금 상품 내지 서비스의 출처에 대한 혼동을 유발시키게 된다면 상표법 위반이 성립될 수 있다. 따라서 광고기획자 입장에서는 불필요하게, 정당한 이유없이 타인의 상표를 이용하는 것은 반드시 피하여야 할 부분이다. 참고할 해외 사례로는 미국의 마스터카드(Mastercard)사건이 있다. 마스터카드사는 국제축구연맹과 1994년도 올림픽 공식 스폰싱 계약을 체결하고 올림픽 관련 휘장 등을 광고에 사용할 권한을 얻었다. 그런데 미국의 통신업체인 Sprint사가 자사가 제작한 전화카드를 판매하면서 월드컵 휘장을 새겨넣었던 것이다. 이에 대해 미국 법원은, Sprint사의 광고는 마치 Sprint사가 국제축구연맹과 공식 후원계약을 체결한 것과 같은 혼동을 초래하는 것으로서 상표법 위반에 해당된다고 판시하고 해당 전화카드의 판매를 금지시켰다. 동사례에서 Sprint사가 월드컵 휘장(상표)을 명시적으로 사용하지 않았다면 결과는 충분히 달라졌을 것으로 보인다.
다음으로 퍼포먼스 마케팅 또는 매복 마케팅이 부정경쟁방지법이 금지하는 상품주체 혼동행위 또는 저명상표 희석행위에 해당되는지 문제될 수 있다. 우선 ‘상품주체 혼동행위’가 성립하기 위하여는 주지성을 획득한 타인의 상품표지와 동일 또는 유사한 표지를 사용함으로써 타인의 상품과 혼동을 일으킬 우려가 있어야 한다(부정경쟁방지법 제2조 제1호 가목). 그리고, 그와 같은 우려는 상품표지의 주지성과 식별력의 정도, 표지의 유사정도, 사용태양, 상품의 유사 및 고객층의 중복 등으로 인한 경업, 경합관계의 존부, 모방자의 악의(사용의도) 유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하게 된다(대법원 2001. 4. 10. 선고 98도2250 판결). 그런데 퍼포먼스 마케팅에서 타인의 상표나 상품표지를 명시적으로 사용하지 않게 된다면 위 상품주체 혼동행위 문제는 애초부터 발생하지 않게 될 것이다. 나아가 관련 상표가 부득이 사용되더라도 그 기획의도 또한 대부분 경쟁사 브랜드와의 비교 내지 차별화에 있으므로 그것이 타인의 상품과 혼동을 일으킬 우려가 있다고 보기도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일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매복 마케팅의 경우 또한, 예를 들어 광고주가 올림픽이나 월드컵의 휘장을 이용한다 하더라도 광고주는 해당 이벤트에 대한 소비자의 일반적인 관심을 이용하는 것이지 올림픽위원회가 국제축구연맹의 상품 내지 영업과 경쟁하거나 이를 대체하는 것으로 인식될 여지는 없으므로 이 또한 상품주체 혼동행위에 해당될 가능성은 낮다고 본다.
비슷한 이유에서 부정경쟁법상의 저명상표 희석행위 또한 성립되기 어려울 것으로 판단된다. 부정경쟁법상 금지되는 ‘저명상표 희석위행’란 정당한 사유없이 국내에 널리 인식된 타인의 상품표지와 동일 또는 유사한 표지를 사용함으로써 타인의 표지의 식별력이나 명성을 손상하는 행위를 말하는데(부정경쟁방지법 제2조 제1호 다목), 앞서 본 바와 같이 퍼포먼스 마케팅이나 매복 마케팅에서는 타인의 상표 등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 충분히 가능하기 때문이다.
한편, 매복 마케팅과 관련하여서는 추가적으로 검토되어야 할 부분이 있다. 많은 스포츠 이벤트가 그 고유의 마케팅 규제 관련 규정을 마련하고 있다는 점이 그것이다. 이를테면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방송권자 등이 IOC 스폰서들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하여 방송중계권 계약 등을 체결하면서 방송사 등이 IOC 스폰서들의 경쟁회사와 별도의 스폰서계약 등을 체결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고 한다. 나아가 각각의 올림픽을 개최하는 국가들은 행사 관련 별도의 특별법을 제정하여 퍼포먼스 마케팅이나 매복 마케팅을 일정 부분 금지하는 규정을 두고 있음이 대부분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과 관련하여 “2018 평창동계올림픽대회 및 장애인동계올림픽 대회 지원 등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어있는데, 동법에 따르면 조직위원회가 아닌 자는 “2018 평창 동계올림픽대회 및 장애인동계올림픽대회 조직위원회” 또는 그와 비슷항 명칭을 사용할 수 없고, 조직위원회가 지정한 회장, 마스코트 등을 사용하고자 하는 자는 사전에 조직위원회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위반시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
지금까지 퍼포먼스 마케팅과 관련된 법률문제들을 짚어 보았다. 외국의 사례들은 타인의 상표 내지 상품표지를 명시적으로 이용하지 않은 퍼포먼스 마케팅 내지 매복 마케팅은 합법적인 것이라는 결론을 같이 하고 있고, 이는 우리나라에서도 현행법제하에서는 타당한 것으로 판단된다.
정원일 변호사
<DAEHONG COMMUNICATIONS 2012년 9월/10월호>에 게재되었던 글을 일부 수정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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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좋은 정보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