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방법원, “SK텔레콤의 CF노래 ‘되고송’ 표절 아니다” – 샘플링(sampling)의 저작권 침해 논의에 대한 단초

이미 신문지상을 통해 보도된 내용입니다(관련 기사는 여기).  이 사건은 우리에게 친숙한 ‘노란 셔츠의 사나이’ 등의 작곡가가  SKT의 CF에 나오는 ‘되고송’이 자신들의 노래 일부를 차용, 짜집기해 만든 노래라며 소송을 낸 것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서울중앙지방법원은 ‘되고송’이 표절이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요즘 유명 가수들의 표절 내지 표절 시비로 시끄럽습니다.  법적으로 표절이냐 아니냐를 판단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요 표절이 인정된 경우는 이른바 ” MC몽의 ‘너에게 쓰는 편지’ 사건”이 거의 유일하지 않나 싶은데요(관련 기사는 여기).  표절 성립을 부인했다는 점에서 위 사건은 별반 특별할 것(?) 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위 사건은 제게 그동안 샘플링의 저작권 침해 여부를 놓고 벌어진 논쟁을 다시 한 번 떠올리게 했습니다.  특히 기사가 소개한 아래와 같은 법원의 판단 부분이 그런데요.

“작곡자의 일관된 하나의 사상 또는 감정이 표현돼 창작된 하나의 곡에 있어서 그 곡의 일부를 구성하는 짧은 음의 배열이 별도의 저작물로서 저작권법에 의해 보호받기 위해서는 전체 곡과는 별도로 이를 구성하는 짧은 음의 배열자체에 전체 곡과는 구별되는 저작자의 사상 또는 감정이 창작적으로 표현돼야 한다…(중략)…그러나 원고들이 되고송이 도용했다고 주장하는 노래의 각 부분들은 되고송과 유사성을 드러내기 위해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음의 배열 중 그 일부를 작위적으로 잘라낸 부분이다…(중략)…완성된 하나의 곡을 구성하는 일부 음의 배열을 쉽사리 저작권법에서 보호되는 저작물로 인정할 경우, 저작물의 공정한 이용을 도모해 문화 및 관련 산업의 발달에 이바지한다는 저작권법의 목적에 반할 수 있다

법원이 “곡의 일부를 구성하는 짧은 음의 배열”을 문제삼고 있다는 점에서, 위 판결은 이른바 “샘플링”의 표절 여부에 대한 논의의 소재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 것입니다.  샘플링이란 어느 곡의 특정 멜로디나 음, 리듬, 악기 소리 등을 일부 추출하여 자신의 곡에 사용하는 것인데요.  샘플링이 저작권 침해에 해당되는지 논란이 있습니다.  사실 요즘 분위기는 저작권 침해라는 쪽이 매우 강한 것 같습니다만, 위 법원의 판단내용에서 아이디어를 얻는다면 샘플링의 대상이 되는 ‘원곡의 일부를 구성하는 음의 배열이나 악기 소리’는 저작권의 보호를 받지 못하므로 이를 허락없이 사용해도 저작권 침해는 아니라는 주장을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사실 이와 비슷한 접근(방어) 방법은 예전에 그 유명한  Bridgeport Music사건에서 이미 사용되었습니다.  이는 미국의 어느 힙합그룹이 유명 훵크밴드  Funkadelic의 곡에서 2초 분량의 기타 리프를 추출하여 사용한 것이 문제되었는데요.  1심법원은 저작권 침해가 아니라고 보았습니다.  2초 분량의 기타 리프를 사용한 것은 너무나 사소한 것이어서 저작권 침해로 볼 수 없다는 것이 이유였습니다(이른바  de minimis doctrine).  그러나 항소법원은 원심을 파기하고 저작권 침해를 인정하였습니다.

그런데 비슷한 사안을 두고 얼마 전 독일의 최고법원은 저작권 침해가 아니라는 판단을 내린 예가 있어 주목됩니다.  독일의 어느 랩 뮤지션이 유명그룹 Kraftwerk의 노래 중 2초 분량의 리듬 섹션을 샘플링한 것이 문제된 사안에서 당초 법원은 “샘플링한 분량이 아무라 짧다 하더라도 저작권 침해임에는 분명하다”고 판단하였으나(앞서 말한 미국의 항소법원과 마찬가지 입장인 것이지요), 독일 최고법원은 2008년 11월 원심의 판단을 뒤집고 저작권 침해가 아니라고 판결한 것입니다.  그리고 최고법원은 샘플링이 합법이 될 수 있는 몇 가지 조건을 제시했다고 하는데요.  그것은 (i) 어떤 경우에도 멜로디는 샘플링하지 말 것, (ii) 사용된 부분(샘플)이 원곡과는 완전히 구별되는 새로운 음악저작물의 구성부분으로 인정되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관련 기사는 여기).

원곡과의 실질적인 유사성을 감득하기 어려운 경우임에도 불구하고 원곡의 일부를 사용했다는 사정만으로 무조건 저작권 침해라고 보는 것은 무리로 보입니다.  모든 새로운 저작물이 어느 정도 기존 저작물이 이루어 놓은 토대에서 시작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고, 타인의 저작물이 이용되더라도 그 이용의 형태나 목적, 결과물의 양상 등 개개의 사정에 따라 저작권 침해 여부에 대한 결론은 달라질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법원이 앞서 보도된 내용처럼 “저작물의 공정한 이용을 도모하여 문화 및 관련산업의 발달에 이바지하는 것이 바로 저작권법의 목적”이라고 판시한 부분도 그러한 관점에서 음미해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관련산업의 발달’이라는 말이 나와서 말인데요, 현재 미국에서는 ‘샘플링을 하기 위해서는 원저작권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는 관행이 상당 부분 자리잡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일각에서는 바로 그와 같은 관행이 돈없는 신진 랩뮤지션들의 성장을 가로막고 힙합 음악시장을 고갈시킨다는 비판이 있습니다.  이러한 비판은 보다 구체적으로 P. Diddy와 같은 유명 뮤지션들이 샘플링 관련 표절소송으로 피소되면 법정에서 ‘공정이용(fair use)’과 같은 sampling의 합법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주장을 제대로 하지도 않은 채 성급히 조정(화해)에 응해버림으로써, 결국 돈 많은 뮤지션은 돈을 내고 샘플링하고 가난한 신진 음악가들은 샘플링을 할 수 없는 구조가 되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선뜻 이해 안 가는 부분도 있을 수 있겠습니다만, 힙합 쪽에서 샘플링이라는 표현방식이 차지하는 비중을 생각하면 그와 같은 하소연이 전혀 이해 못할 바도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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