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항소법원, “자동 광고 건너뛰기 기능이 부가된 방송 녹화서비스는 저작권 침해가 아니다”

그림 1미국의 제9연방항소법원이 어제 내린 판결이다.  이 사건은 미국의 3대 위성방송사업자인 Dish Network(“Dish”)의 셋톱박스(STB)가 제공하는 PrimeTime Anytime과  AutoHop이라는 기능(이하 “AutoHop”이라고만 한다)과 관련된다.  AutoHop은 간단히 얘기하면 RS-DVR에 Automatic Commercial Skipping 기능이 추가된 것이다.  Dish 가입자가 AutoHop을 기동하면 4대 메이저 방송사의 저녁 황금시간대 프로그램 1주일치가 자동적으로 녹화된다.  특이한 점은 해당 프로그램은 1차적으로는 Dish의 메인 서버에 녹화된다는 것이고(RS-DVR) 녹화된 프로그램을 재생하면 (시청자가 따로 돌려보지 않는 한) 프로그램 중간중간의 광고들은 자동으로 건너뛰기가 된다는 것이다(Commercial Skipping).

폭스 방송사는 AutoHop이 방송물에 대한 자신의 저작권을 침해했다며, 캘리포니아주 연방법원에 서비스 제공 금지 가처분신청을 제기하였다.  AutoHop 서비스에는 방송저작물의 복제가 발생하는데, 이는 자신의 허락이 없이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저작권 침해라는 것이다.  물론 소송 제기 이면에는 방송프로그램의 녹화 자체보다는 ‘광고건너뛰기’ 기능에 대한 방송사의 거부감이 강하게 자리 잡고 있었을 것이다.  사실 그동안의 언론보도도 그 포커스가 ‘광고건너뛰기’ 기능에 맞춰졌었던 것 같다.

1심법원은 폭스 방송사의 신청을 기각하였다.  저작권 침해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제9연방항소법원도 폭스 방송사의 항소를 기각하였다.

사실 이와 같은 결과는 이미 상당 부분 예견되었던 것이 아닌가 한다.  왜냐하면 이미 미국에는 이른바 ‘케이블비전 사건‘(Cartoon Network LP v. CSC Holdings, Inc.)이라 하여 RS-DVR서비스는 저작권 침해가 아니라는 판례가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사건은 ‘케이블비전 사건’ 이후 진화하는 미국의 RS-DVR서비스에 대해 기존의 법과 판례가 어떠한 양상으로 추급해 나아가고 있는지를 지켜볼 수 있다는 점에서 그 흥미로움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우선 연방항소법원은 저작권 침해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 ‘과연 누가 복제행위의 주체인가, Dish인가 아니면 개별 이용자들인가’의 문제를 논하였다(‘Who Makes the Copy’의 문제).  당연히 폭스 방송사는 녹화서비스의 제공자인 Dish가 방송저작물을 녹화한 것이라고 주장한 반면, Dish측은 자신은 녹화의 도구만 제공하였을 뿐 실제 녹화는 개별이용자들이 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연방항소법원은 Dish의 손을 들어주었다.  연방항소법원은 “이용자의 명령에 따라 녹화가 이루어지는 시스템을 운영하는 것이 곧 시스템 운영자가 복제행위의 주체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복제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이용자가 서비스(AutoHop)를 기동해야만 하고, 그와 같은 점에서 개별이용자가 복제라는 결과의 가장 중요한 원인이다.  따라서 복제행위의 주체는 개별이용자이다”라고 판단하였다.  이는 과거 ‘케이블비전 사건’에서 법원이 취한 입장과 동일한 것이다.

주목할 만한 점은, (1심법원이 지적한 바와 같이) AutoHop은 과거 케이블비전 사건에서의 RS-DVR보다는 복제행위에 대한 서비스제공자의 관여도가 상대적으로 높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Dish는 녹화 시작시간과 종료시간을 변경할 수 있고, 녹화물의 보존시간도 Dish가 결정하며, 특히 일단 녹화서비스가 개시되면 개별이용자는 이를 중단하지 못한다고 한다.  그렇지만 연방항소법원은 이와 같은 사정만으로는 Dish가 녹화행위의 주체로 격상되기에 부족하다고 보았다.

다음 이슈로는, 만약 Dish가 복제행위의 주체가 아니라면 적어도 복제행위에 대한 2차적인 책임(contributory liability.  우리나라 법으로는 저작권 침해의 방조 책임 정도로 이해하면 되겠다)은 져야 하는 것이 아닌지가 다투어졌다.  그러나 법원은 이 부분에서도 Dish측의 손을 들어주었다.  저작권 침해에 대한 2차적 책임이 인정되려면, 그 전제로서 개별이용자들의 복제행위가 ‘저작권 침해’에 해당되어야만 하는데(1차적 책임), AutoHop을 통한 녹화는 공정한 이용(fair use)에 해당되어 적법하므로 2차적 책임 또한 성립할 수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연방항소법원은 과거 VCR이 등장하였을 때 비슷한 이슈를 두고 나온 미국 연방대법원의 ‘Sony Betamax 판결‘을 언급하며, VCR이 time-shifting으로서 공정한 이용에 해당되듯이, RS-DVR 또한 place-shifting으로서 공정한 이용에 해당된다고 본 것이다.

이에 대해 폭스 방송사측은 Dish의 AutoHop 서비스는 time-shfting이나 place-shifting을 위한 것이 아니라 ‘commercial shifting’을 위한 것이므로 공정한 이용으로 보호받을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얘기가 길어졌으나, 이제서야 폭스 방송사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얘기가 법정에서 다투어지게 된 것이다.  하지만 법원은 그와 같은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i) 폭스 방송사는 ‘광고’를 문제삼고 있지만 사실 ‘광고방송’에 대하여는 폭스가 저작권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 (ii) 방송프로그램 전체를 녹화하는 것이 fair use로서 보호되는 마당에 이용자가 그 일부인 광고만을 보지 않고 건너뛰었다고 하여 fair use가 아닌 것으로 행위의 성질이 격하될 수는 없다는 점이 그 이유였다.

얼마 전부터 방송프로그램의 녹화서비스를 전문적으로 제공하는 업체들이 등장하면서 여러가지 복잡한 이슈들을 낳고 있다.  이는 비단 어느 한 국가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세계 여러나라에서 비슷한 모양새의 서비스 제공업체들이 등장하고 있고 이에 대한 각국 법원의 판단도 일관돼 있지 않다(관련 포스트는 여기).  방송프로그램 녹화서비스만 해도 그 다양한 서비스 구현방식으로 인해 법에 의한 판단이 달라질 수 밖에 없을 터인데, 하물며 법률과 판례의 내용을 달리하는 다른 나라의 경우라면, 이를 동일선상에서 비교하고 평가하겠다는 것 자체가 애당초 무리일 것이다.  어찌 되었건 금번 미국 연방항소법원의 판결은 미국의 경우 지난 번 ‘케이블비전 사건’ 판결이 일관되게 유지되고 있고, 그 덕분에 소비자들에게 다양한 서비스가 제공될 수 있는 것 아니겠느냐는 생각을 해 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참고로, 현재 미국에서는 ‘Aereo‘라는 유사한 사건이 재판 진행 중에 있어 이 역시 참고할 가치가 있는데, 이에 대한 설명은 다음 기회로 미루기로 한다.  다만 그 결과만 간략히 언급하자면, 이 역시 방송사측의 패소였다.  Aereo는 가입자별로 소형 안테나를 설치하여 공중파 무료방송을  수신한 뒤 이를 인터넷으로 전송하는 서비스로서, 미국의 주요방송사들은 이를 막기 위해 법원에 저작권 침해라며 소송을 제기했지만, 1심 및 항소심 모두 방송사의 청구를 기각하였던 것이다(2013년 4월).  물론 그와 같은 결론의 근저에는 케이블비전 사건이라는 법원의 선례가 자리잡고 있다.

한편, 금번 AutoHop 사건의 연방항소법원 판결문은 여기를 클릭하면 다운로드가 가능하다.

[후기: 위에 언급된 Aereo사건에 대하여는 최근 연방대법원이 저작권침해를 인정하였다.  관련 글은 여기, 여기 (2014/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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